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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경제소사/12월7일] 국민당 패주


1949년 12월7일, 장제스(蔣介石) 정권이 수도를 난징에서 타이베이로 옮겼다. 국민당은 왜 대륙에서 쫓겨났을까. 망가진 경제 탓이다. 가장 가까운 거리에서 중국의 공산화를 지켜본 미국 외교관 무초 주한미국대사가 국무부에 보낸 보고서를 살펴보자. ‘국민당 정부의 붕괴에는 군사적 무능보다 인플레이션 문제가 더 크게 작용했다.’ 인플레이션은 내내 중국을 괴롭혔다. 중일전쟁이 일어난 1937년 소 두 마리를 살 수 있었던 100원의 구매력이 1945년에는 계란 두개로 떨어졌다. 물가 상승률로 치면 21만2,690%. 돈의 가치가 얼마나 떨어졌는지 중일전쟁 중 미군 수송기가 지폐를 실어나르기 위해 탄약과 군수물자ㆍ식량 보급에 차질을 빚은 적도 있다. 2차 대전 승전 후 상황은 더 나빠졌다. 외환ㆍ무역 자유화를 서두르는 통에 미국제 상품이 밀려와 빈약한 생산기반을 갉아먹었다. 홍군(紅軍ㆍ공산군)과의 내전에 대비하기 위해 남발한 화폐로 초(超)물가고가 이어지는 가운데 법정화폐와 구 일본 점령지역 괴뢰정부가 발행한 화폐간 교환비율, 미국 달러화와 환율도 지역마다 달라 혼란을 부추겼다. 인플레이션에 시달렸던 대표적인 도시인 상하이에서는 물가가 하루에 30배씩 뛰기도 했다. 최후의 카드로 꺼낸 1948년 여름의 통화개혁으로도 물가고는 잡히지 않았다. 100원의 구매력도 1949년에는 종이 한 장으로 내려앉았다. 그나마 남아 있던 국영기업과 일본이 남긴 적산기업도 부패한 관료들의 뱃속으로 들어갔다. 결국 생활고와 부패에 지친 중국인들은 국민당 정권에 등을 돌렸다. 병력 500만명에 항공기 500대, 전차 1,200대를 보유한 국민당 군대가 소총조차 부족했던 120만명의 홍군에게 대륙을 내준 이유가 여기에 농축돼 있다. ‘경제난, 민심 이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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