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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7월 총선을 치른 태국은 세계 정치가 여전히 포퓰리즘(대중 영합주의)에 휘둘리고 있음을 여실히 보여줬다. 최저임금 50% 인상 등 각종 장밋빛 공약을 앞세운 잉락 친나왓 총리의 푸어타이당은 압도적인 지지로 정권을 다시 찾는 데 성공했다.
그러나 6개월이 흐른 지금 태국 경제의 현실은 어둡기만 하다. 사상 최악의 대홍수까지 겹치면서 태국 경제사회개발위원회(NESDB)는 지난해 국내총생산(GDP) 성장률 전망치를 기존 3.5~4.0%에서 1.5%로 끌어내렸다. 잉락이 경제를 살릴 것이라는 기대가 산산이 부서진 셈이다.
미국 등 세계 주요 국가들의 지도자가 바뀌는 2012년. 올해에는 '제2의 태국'이 나타나지 않을 것인가. 대다수 전문가들은 "아니오"라고 대답하고 있다. 오히려 올해야말로 포퓰리즘이 득세하기에 알맞은 환경이라는 지적마저 나온다. 유럽 재정위기를 기점으로 글로벌 경제가 쪼그라들고 있는 가운데 사회의 기둥인 중산층마저 급속히 무너지면서 사회적 갈등이 이곳저곳에서 폭발하고 있기 때문이다.
세계적 헤지펀드인 브리지워터어소시에이츠의 레이 달리오 대표는 이를 두고 "올해가 '군중지배(Mob Rule)'의 시대가 될 수 있다"고 경고했다.
◇포퓰리즘 쓰나미 온다=포퓰리즘의 징후는 이미 전세계 곳곳에서 나타나고 있다. 특히 경제위기의 한복판에 서 있는 유럽에서는 포퓰리즘을 등에 업은 초국가주의가 나타날 것이라는 음울한 전망마저 제기된다. 경제파탄 속에 나치즘이 득세한 지난 1930년대 독일과 현재의 상황이 유사하다는 것이다.
크리스천사이언스모니터(CSM)는 유럽 재정위기의 직격탄을 맞은 헝가리가 극단적 포퓰리즘이 힘을 얻고 있는 대표적 국가라고 최근 보도했다. 디폴트(채무불이행) 위기에도 불구하고 재정지출 확대 등 선심성 정책을 내세워 정권을 차지한 빅토르 오르번 헝가리 총리는 이달 초 헌법마저 개정해 법원의 권한을 축소하는 한편 중앙은행 총재 임명권을 대통령에게 부여했다.
정치 선진국으로 분류되는 프랑스도 예외는 아니다. 4월 대선을 앞둔 현재 지지율 1위를 달리고 있는 프랑수아 올랑드 사회당 후보는 교원 6만명 충원과 유럽중앙은행(ECB) 역할 확대 등을 공약으로 내걸었다. 전문가들은 ECB의 채권시장 개입이 단기적으로는 시장을 안정시킬 수 있지만 장기적으로는 재정위기를 악화시킬 것으로 분석하고 있다. 표를 얻기에는 좋은 정책이지만 미래를 장담할 수는 없다는 것이다.
더구나 독일이 이 같은 정책에 극력 반대하고 있는 점을 감안하면 유럽 재정위기는 4월 이후 아예 다른 노선을 걷게 될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니콜라 사르코지 대통령 또한 금융거래세 도입을 밀어붙이는 등 서민 표를 흡수하기 위해 안간힘을 쓰고 있다.
러시아의 유력한 대권 후보인 블라디미르 푸틴 역시 재벌을 몰아붙여 서민의 표를 얻으려는 전략을 구사하고 있다. 올해 주(州) 별로 선거가 치러지는 인도에서는 주지사로 당선될 경우 수도와 교육을 무상으로 제공하겠다는 후보마저 등장했다.
또한 일명 '버핏세'로 통하는 부자 증세를 대선 카드로 만지작거리고 있는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에게는 공화당은 물론 민주당 내부에서조차 '포퓰리스트'라는 비판의 목소리가 거세다. 4월 총선을 치를 예정인 그리스에서는 긴축정책에 진절머리가 난 국민들 사이에서 유로존(유로화 사용 17개국)을 탈퇴하고 옛 화폐인 드라크마화로 복귀하자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고 현지 일간 카티메리니가 전했다.
◇재정위기에 마땅한 해결책도 없어=문제는 '월가를 점령하라(Occupy Wall Street)'는 시위에서 나타나듯 서민들의 분노가 치솟고 있지만 이를 누그러뜨릴 만한 마땅한 대책이 없다는 점이다. 대중의 상대적 박탈감을 치유하기 위해서는 긴축완화와 경기부양이 절실하지만 재정여력이 줄면서 정책마련에 제약을 받고 있는 것이다.
특히 경기가 바닥을 치고 있는 상황에서 재정적자 해소를 위해 강력한 긴축정책을 실시해야 하는 유럽의 처지가 심각하다. 블룸버그통신에 따르면 유로존의 지난해 11월 실업률은 10.3%로 사상 최고치를 기록했다. 이는 역내 1,630만명이 일자리를 구하지 못해 고통을 겪고 있다는 뜻이다.
더구나 정권교체와 맞물려 사회적 갈등이 커지고 있는 점을 감안하면 유일한 해법으로 거론되는 계층 간, 세대 간 고통분담 방안도 실마리를 찾기 힘들 것으로 보인다. 씨티그룹은 최근 보고서에서 "올해 신문 1면에는 대규모 시위사태가 많이 보도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이 때문에 선거를 맞이하는 각국 정부가 결국 포퓰리즘의 덫에 빠지게 될 것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후쿠야마 신지 전 일본 경제산업성(METI) 차관은 최근 일본 영자지 재팬타임스에 기고한 칼럼에서 "세계 지도자들이 자국 국민에게 경제 건전화를 위한 비용을 치르도록 설득하는 대신 (표를 얻기에 용이한) 포퓰리즘으로 쏠릴 수 있다"며 "이러한 무책임한 행동은 세계 공통의 이익마저 침해할 것"이라고 비판했다. 또 국민들의 불만을 대외적 강경노선으로 해소하려는 유혹이 커지면서 국제공조도 약화될 것으로 예상된다.
박래정 LG경제연구원 수석연구위원은 이에 대해 "포퓰리즘의 힘을 얻게 된 배경은 경제적 불평등이지만 이를 풀어내는 것은 결국 정치의 영역이 될 것"이라며 "성장과 긴축의 경계선에서 국민적 합의를 이끌어내는 게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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