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체메뉴

검색
팝업창 닫기
이메일보내기

[로터리] 인터넷 공간의 언어와 시선


언어는 오늘날의 인류 문명을 가능하게 한 최고의 발명임과 동시에 지배, 피지배의 권력관계를 형성하는 데에도 광범위하게 이용돼왔다. 예를 들면 중세 시대 가톨릭 사제들은 성경을 라틴어로 번역한 후 이를 읽고, 해석하고 민중에게 전달하는 기능을 독점함으로써 가톨릭의 중세 천년 지배를 가능하게 했다.

같은 맥락에서 종교개혁을 통해 가톨릭의 지배력을 약화시킨 것은 바로 마르틴 루터가 라틴어 성경을 독일어로 번역해 누구나 성경을 접할 수 있도록 함으로써 가능했다.

시선(視線)도 언어와 마찬가지로 권력행사의 수단이 될 수 있다. 이쪽에서는 저쪽을 볼 수 있지만 저쪽에서는 이쪽을 볼 수 없을 때 이쪽이 손에 쥐게 되는 권력이 바로 시선의 힘이다. 즉 보는 자와 보이는 자의 관계에서 발생되는 권력관계다. 그리스ㆍ로마 신화에 시선이 한번 마주치면 돌이 돼버린다는 메두사의 무서운 눈 얘기는 바로 시선의 힘을 상징하는 것으로도 해석할 수 있다.

재미있는 것은 오늘날, 언어와 시선의 권력이 이런저런 형태로 인터넷 공간에서 매우 효율적인 결합을 이뤄 행사되고 있다는 점이다.

인터넷은 거의 모든 언어적 표현의 해방구이며 다수의 시선이 모이는 곳이다. 이런 인터넷 공간은 정치인ㆍ연예인 등이 대중적 인지도를 생산하고 확산시키는 데에 더 할 수 없이 좋은 매체지만 그 반대로 그들의 언어와 시선에 의해 감시 받고 상처 받는, 그래서 결국 그들의 영향력에 종속될 수 있는 이중적 속성을 갖고 있다.



인터넷의 활용에 능숙한 사람들이 독설ㆍ공작ㆍ음모의 언어로 무장하고 보는 자의 이점을 활용해 보이는 자의 약점과 문제를 까발려 다수의 시선을 모을 경우 개인의 존엄성과 명예를 짓밟고 급기야 죽음으로까지 몰고 갈 수 있음은 우리 사회가 이미 여러 차례 경험한 바 있다.

일부 사람들은 인터넷이 표현의 자유를 완벽하게 구현하고 또한 민주주의의 이상이라고 할 수 있는 직접 민주주의를 가능하게 했다고 환호한다. 그러나 과연 그럴까.

혹 인터넷이 책임지지 않는 자들, 권력쟁취에 눈먼 정치꾼, 또는 누군가를 감시ㆍ지배하고자 하는 자들이 언어와 시선의 권력을 은밀히 즐기는 병적 욕망의 분출구가 되고 있지 않은지 생각해볼 일이다. 사이버 폭력을 방지하기 위해 지난 2007년에 도입한 인터넷 실명제가 최근에 위헌 판결을 받게 됨으로써 앞으로 견제 받지 않는 언어ㆍ시선의 권력이 인터넷 공간에 판치지 않을까 걱정이다.
< 저작권자 ⓒ 서울경제,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
주소 : 서울특별시 종로구 율곡로 6 트윈트리타워 B동 14~16층 대표전화 : 02) 724-8600
상호 : 서울경제신문사업자번호 : 208-81-10310대표자 : 손동영등록번호 : 서울 가 00224등록일자 : 1988.05.13
인터넷신문 등록번호 : 서울 아04065 등록일자 : 2016.04.26발행일자 : 2016.04.01발행 ·편집인 : 손동영청소년보호책임자 : 신한수
서울경제의 모든 콘텐트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는 바, 무단 전재·복사·배포 등은 법적 제재를 받을 수 있습니다.
Copyright ⓒ Sedaily, All right reserved

서울경제를 팔로우하세요!

서울경제신문

텔레그램 뉴스채널

서경 마켓시그널

헬로홈즈

미미상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