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의회가 내년도 예산안(2013년 10월~2014년 9월)에 대한 합의안을 이끌어낼 가능성이 크게 높아졌다. 이에 따라 내년 1월 연방정부 셧다운(정부 폐쇄) 사태가 재발하지는 않을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타협안을 마련하더라도 세제나 사회보장제도 개편 등 핵심 쟁점은 빠진 미봉책에 불과한데다 지난 10월 국가 디폴트(채무불이행) 우려를 초래한 정부 채무한도 문제는 논의조차 하지 않아 내년에도 이른바 '워싱턴 리스크'는 지속될 것으로 전망된다.
3일(현지시간) 블룸버그통신 등에 따르면 민주·공화 양당 의원 29명으로 구성된 재정관련협상특별위원회는 오는 13일 협상 데드라인을 앞두고 두 가지 큰 틀에서 의견접근을 이룬 뒤 이르면 이번주 말 세부 합의안을 공개할 방침이다.
우선 특위는 2015년까지 매년 예산법으로 확정되는 '재량적 지출(discretionary spending)' 규모를 1조달러 정도로 늘리는 데 합의한 것으로 전해졌다. 그동안 공화당은 2011년부터 시행된 '예산관리법'에 따라 현행 9,670억달러 유지를 고집해온 반면 민주당은 1조580억달러로 늘려야 한다고 주장해왔다. 또 공화당의 주장대로 기업 세제혜택 조치를 유지하는 대신 일명 '9·11비용'으로 불리는 항공여객 수수료 인상, 연방공무원 은퇴 프로그램 축소, 정부 소유의 방송사 매각 등을 통해 부족한 재원을 메우기로 했다.
10월17일 민주·공화 양당은 16일간의 셧다운 사태를 끝내기 위해 일단 내년 1월15일까지 한시적으로 쓸 수 있는 임시 예산안을 처리하고 내년 2월7일까지 연방정부의 부채한도를 적용하지 않는 방식으로 디폴트 위기를 피해간 바 있다. 또 포괄적인 재정협상안은 특위를 구성해 12월13일까지 내년도 예산안을 마련하기로 합의했다.
특위 위원인 톰 콜(오클라호마) 공화당 의원은 이날 "그랜드 바겐(대타협)이 아닌 실행 가능한 수준으로 논의가 진행됐다"며 "최종 합의에 도달할 수 있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미 정치전문 매체인 폴리티코 역시 "(올해 3월부터 이어진) 시퀘스터(예산 자동삭감)를 대체할 스몰딜"이라며 "내년 중간선거를 앞두고 양당의 이해관계가 맞아떨어지면서 내년 초 셧다운이 재연될 가능성도 낮아졌다"고 평가했다.
공화당 입장에서는 10월 초 셧다운 사태를 주도했다가 지지율이 사상 최악으로 떨어졌지만 이번 합의로 책임론을 희석시킬 수 있다는 것이다. 민주당도 시퀘스터의 충격을 줄이고 각종 경기부양책을 유지하는 한편 앞으로 이민법 개혁에 역량을 집중해 히스패닉 등 소수인종 유권자를 불러모을 수 있는 발판을 마련했다.
하지만 특위가 마련 중인 합의안에 대해 양당 강경파가 불만을 표출하고 있어 상·하원을 통과할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일부 민주당 의원과 버락 오바마 행정부는 어느 정도의 기업 감세중단 조치는 공화당이 받아들여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반면 티파티 등 공화당 강경파는 매년 1,100억달러씩 10년간 총 1조2,000억달러의 연방정부 지출을 자동 삭감하기로 한 예산관리법을 지켜야 한다고 고집하고 있다. 아울러 특위가 당초 목적과 달리 정부부채 상향조정은 거의 협상안건에 올리지도 않음에 따라 내년 1월 말 국가 디폴트 우려가 다시 불거질 가능성이 높다.
다만 양당 지도부는 내년 예산안 합의가 불발될 경우 추가적 잠정예산안을 통과시킬 것으로 보여 셧다운 사태만은 피할 수 있을 것으로 전망된다. 실제 이날 존 베이너 하원의장은 "협상이 실패하면 다음주에 9,670억달러 규모의 임시 예산안을 의회에 제출할 방침"이라고 밝혔고 해리 리드 민주당 상원 원내대표도 긍정적인 반응을 보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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