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녹슬고 구부러진 못, 이가 빠진 토기 항아리…. 우리가 일상에서 만나는 사물들이 크고 하얀 한지 위에 그림자도 없이 허공을 떠다니고 있다. 카메라 렌즈를 통해 포착한 사물은 본연의 색채나 형태를 버리고, 근원을 찾아 나서기라도 하는 것처럼 커다란 한지에 스며든다.
소공동 신세계백화점 본점 신세계갤러리에서 열리는 이정진 개인전 '사물(THING)'은 지난 2003∼2007년 제작한 작품 20여 점을 모은 사진전이다. 미국 뉴욕에서 거주하며 활동하는 세계적인 여류 사진작가 이정진의 '사물(THING)' 시리즈는 우리 일상에서 볼 수 있는 소박한 물건들이 전혀 다른 모습으로 보여질 수 있다는 사실을 깨닫게 만든다. '사물' 시리즈는 녹슬고 구부러진 못과 흠집 난 숟가락, 가마솥을 닦을 때 쓰는 솔 수세미 등 소박한 사물을 크게 확대해 보여준다. 마치 한지에 목탄으로 그린 회화 같아 거듭 들여다보게 되지만 실제로 카메라로 촬영한 사진이라는 사실을 확인한 순간 관람객은 당황한다.
그의 작품은 뉴욕 메트로폴리탄 미술관과 휘트니 미술관, 휴스턴미술관에서 경쟁적으로 소장할 정도로 이미 국제적인 인지도를 얻고 있다. 서양 문물의 산물인 사진이 동양의 한지와 만나 특별한 영감을 전하기 때문일 것이다.
"작가는 작업을 남기기 위한 사람이라기보다는 작업하는 시간을 통해 자신의 호기심과 정신세계를 완성해가는 과정을 겪는 사람이라고 생각합니다. 저는 사진이라는 수단을 통해 시(詩)를 쓰고 있습니다."
현재 작가는 기존에 작업하던 사물과 풍경에다 처음으로 사람까지 소재로 삼은 '숨(BREATH)' 시리즈를 작업 중이다. 아울러 2010∼2011년 세계적인 사진작가들과 함께 작업한 '이스라엘: 진행 중인 초상화(Israel: Portrait of a Work in Progress)' 프로젝트의 결과물도 조만간 선보일 예정이다. (02) 310-192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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