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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 홀 버디 퍼팅을 할 때는 너무 떨려서 오늘 갓 프로에 데뷔한 느낌이었어요." 21일(한국시간) 미국 캘리포니아주 샌디에이고의 토리파인스GC 남코스(파72ㆍ6,721야드)에서 열린 미국여자프로골프(LPGA)투어 삼성월드챔피언십 4라운드 마지막 18번홀(파5). 최나연(22ㆍSK텔레콤)에게 1.2m는 한없이 멀게만 느껴졌다. 버디 퍼트를 집어 넣으면 우승이지만 놓치면 미야자토 아이(일본)와 연장전을 벌여야 하는 절체절명의 상황. 연장으로 갈 경우 추격해온 미야자토보다 역전을 허용한 최나연이 심리적으로 밀릴 수 있는 분위기였다. 침착하게 한 퍼트는 그대로 홀에 빨려 들어갔다. 최나연이 1.2m에 불과했던 '기대주'와 '우승자 반열'의 간격을 마침내 뛰어넘은 순간이었다. 최나연은 중학교 3학년 때 국가대표로 선발된 유망주였다. 고교시절 박세리(32)가 출전한 한국여자프로골프 ADT캡스인비테이셔널에서 우승했고 프로로 전향해서도 3승을 더 거뒀다. 지난해 미국에 본격 진출한 뒤로는 번번이 우승 문턱에서 미끄러졌다. 지난해 에비앙마스터스에서 연장전 끝에 헬렌 알프레드손(스웨덴)에게 패했고 신인왕 타이틀도 청야니(대만)에 빼앗겼다. 지난 3월 마스터카드클래식에서도 2라운드까지 공동 선두를 달리다 최종일 5타를 잃고 무너졌다. 하지만 고대했던 첫 우승으로 '새가슴'이라는 꼬리표를 떼어내며 강호로 자리잡을 발판을 마련했다. 최근 정신력을 키우기 위해 스포츠심리학자의 도움을 받기도 했던 최나연은 이날 공식 인터뷰에서 "그동안 정신적으로 매우 약했다고 생각한다. 오늘 후반에 흔들리기는 했지만 잘할 수 있다고 내 자신에게 얘기했다"고 말했다. 55번째 출전 대회에서 처음 거둔 이날 우승도 극적이었다. 3라운드까지 2위 신지애(21ㆍ미래에셋)를 2타 차로 앞섰던 최나연은 6번홀까지 4타를 줄여 신지애와 미야자토를 7타 차로 떼어놓으며 무난히 정상에 오르는 듯했다. 그러나 9번홀(파5)에서 1m도 안 되는 파 퍼트를 놓치면서 위기를 맞았다. 이후 16번홀까지 3개의 보기를 더 보탰을 때는 한 조 앞에서 경기하며 차근차근 타수를 줄인 미야자토에게 1타 차로 1위 자리를 내줬다. 다시 악몽의 그림자가 드리우는 순간 미야자토가 18번홀(파5)에서 두번째 샷을 물에 빠뜨렸다. 미야자토의 보기로 공동 선두가 된 최나연은 이 홀에서 버디를 잡아내 짜릿한 재역전극을 연출했다. 1언더파 71타를 친 최나연의 우승스코어는 16언더파 272타였다. 우승상금은 25만달러. 1999년 박세리 이후 줄곧 외국 선수의 몫이었던 이 대회 우승컵도 찾았다. 2타를 잃은 신지애는 3위(11언더파)로 마쳤지만 상금(160만5,000달러), 올해의 선수, 신인상 부문 1위를 굳게 지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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