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인이나 혁명가 등 시대를 이끄는 리더들은 연설을 통해 대중과 소통하고 필요에 따라서는 시대의 흐름을 바꾸기도 한다.
인류 문명사의 주요 고전을 번역하는 서울대 인문학연구원의 문명텍스트 총서의 16번째로 나온 '두 정치연설가의 생애'는 각각 아테네와 로마에서 위대한 정치연설가로 명망을 떨치던 데모스테네스(기원전 384~322년)와 키케로(기원전 106~43년)의 생애를 다룬 작품이다.
1세기 중반 그리스에서 태어난 철학자 겸 문인인 플루타르코스가 남긴 '생애의 비교(플루타르코스 영웅전으로 널리 알려짐)'에 나오는 50인의 인물 가운데 대표적인 정치연설가 2인의 생애와 그들의 사상을 비교하고 있다.
아테네의 정치연설가 데모스테네스는 필립포스와 알렉산드로스의 침략에 저항하며 시민의 자유와 민주주의를 지키는 데 일생을 바친 인물로 알려져 있다. 위대한 헬라스 제국을 함께 건설하자는 마케도니아 세력에 맞서 싸웠으며 마케도니아의 필립포스와 알렉산드로스의 야욕을 향해 언어의 비수를 겨누었다. 하지만 그의 투쟁은 거대한 힘에 눌려 실패하고 말았다. 그는 아테네를 점령한 알렉산드로스의 후계자 안티파트로스에게 추격 당했고, 그의 하수인에게 체포되자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제국주의와의 타협을 거부하고 펜에 숨겨 두었던 독약을 삼켰던 것이다.
아테네에서 민주정이 성립했던 것과 거의 비슷한 시기인 기원전 509년께 로마에서도 전통적인 왕정이 무너지면서 공화정이 성립됐다. 아테네의 직접 민주주의 체제와 달리 로마 공화정은 국정의 요직을 직간접 선거로 선출했다. 최고 권력에 접근할 수 있는 권한은 특정 계급에게만 주어졌지만 평민 계층을 대표하는 호민관에 의해 견제를 받는다는 점에서 로마 공화정은 왕정과는 다른 민주적인 특징을 갖고 있다. 하지만 로마 공화정은 카이사르가 제1차 삼두정치의 경쟁자였던 크랏수스와 폼페이우스를 누르고 종신 독재관으로 등극하면서 몰락의 위기에 직면했다. 또 제2차 삼두정치를 이끌며 등장한 옥타비아누스가 실질적인 황제의 권력을 행사하면서 로마 공화정은 독재정치의 본질을 가리는 겉치장으로 남게 됐다. 이 과정에서 로마 최고의 연설가 키케로는 공화정의 이념을 끝까지 사수한 사람이었다. 플루타르코스는 키케로에 대해 "정의로움은 올바로 언급되기만 한다면 무적이며 불굴이라는 사실을, 그리고 올바른 정치 활동을 하는 사람이라면 비위를 맞추려고 하는 대신에 아름다움을 취해야 한다는 사실을 로마인에게 가장 잘 보여줬다"고 평가했다.
플루타르코스는 인물을 평가할 때 역사가로서 정치적 측면을 중시하기 보다는 철학자로서 인간 본성을 밝히는 데 더 많은 관심을 뒀다. 때문에 데모스테네스와 키케로에 대한 플루타르코스의 평가는 정치적 이념을 기준으로 삼는 대신에 그들이 정치지도자로서 존경 받을 만한 성품을 갖고 있으며, 그들이 추구하는 도덕적 가치는 무엇인지를 중요시했다. 이는 오늘날 인물을 탐구하는 데 있어 가슴 속 깊이 명심해야 할 덕목이기도 하다. 2만 2,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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