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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이 쌓여 처마가 내려 앉는데도 건축행위를 할 수가 없고 내 땅에 하우스를 지어 채소 하나 경작을 할 수도 없어요. 언제 개발에 들어갈지도 모르는 만큼 건축행위 제한을 풀고 거래라도 할 수 있도록 해주면 좋겠습니다."(광명시 가학동 이모씨)
지난 주말 기자가 방문한 광명시 가학동 일대. 낮 기온이 영상으로 훌쩍 올라갈 만큼 포근한 겨울 날씨였지만 이 지역 분위기는 삭막한 느낌마저 들었다. 이명박 정부 당시 보금자리주택지구로 지정된 이 일대 산등성이에는 곳곳에 고물이나 폐기물들이 쌓여 있었고 교차로마다 보금자리정책의 입안자를 성토하는 현수막이 곳곳에 걸려 있었다.
인근 O공인 관계자는 "지구지정 이후 이 일대 경제활동은 완전히 올스톱 상태"라며 "지구지정 전에는 공시지가의 두 배 수준으로 농지가 거래됐지만 지금은 공시지가 수준에도 거래가 안 되니 시세가 무의미하다"고 말했다.
광명시흥지구는 지난 2010년 5월 3차 보금자리지구로 지정된 곳이다. 면적이 1,736만7,000㎡로 1기신도시인 분당신도시에 육박해 서남권의 대표 신도시로 개발될 것으로 기대됐었다. 하지만 이후 사업시행자인 한국토지주택공사(LH)의 자금난으로 사업이 진척되지 못하고 있는 상태다.
최영길 광명시흥지구 비상대책위원장은 "주민 의견 수렴도 없이 일방적으로 지구 지정을 해놓고 4년간 아무것도 한게 없다"며 "이제 와서 실효성도 없는 방안을 제시하고 주민 설문을 진행하겠다는 것은 또다시 사업을 연기하겠다는 것일 뿐"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실제로 앞서 지난 3일 광명시 학운동주민센터 1층 회의실에서 열린 '광명시흥지구 사업조정안 설명회'는 정부에 대한 성토의 장이었다. 국토부는 지난해 말 이 일대를 보금자리 사업지로 대부분 유지하되 사업은 2018년 이후 단계적으로 추진하는 방안과 공장부지를 포함, 사업부지를 2.64㎢로 조정해 시가화조정구역으로 묶는 방안을 제시한 바 있다. 두 방안 모두 올해부터 공장부지의 이전을 위한 기본조사에 착수, 내년 보상절차에 들어가 2018년 이주를 목표로 하고 있는 것은 동일하다.
설명회에 참석한 40여명의 각 지구 비대위원들은 국토부의 보도자료 문구 하나하나에도 목소리를 높일 만큼 매우 격앙돼 있었다. LH의 재무여건이 악화된데다 공공기관 정상화 방안으로 추가 채권발행이 제한돼 이미 사업의 정상적인 추진이 현실적으로 어렵다고 정부가 밝힌 만큼 차라리 하루빨리 지구지정에서 해제하라는 것이 참석자들의 요구사항이었다. 설명회에 참석한 한 주민은 "국토부 안은 설명자료가 아니라 협박자료"라며 "사실상 사업을 10년 이상을 연기하겠다는 것과 다름없다"고 말했다.
정부가 두 번째 대안으로 제시한 시가화조정구역 지정에 대한 불만도 높았다. 지방자치단체가 개발사업 추진시 지구를 해제·활용할 수 있도록 했지만 사실상 정부가 여력도 없는 지자체에 사업을 떠넘기는 방안이라는 주장이다.
최영길 비대위원장은 "법적 자문을 받은 결과 장래 시가화를 추진하기 위해 유보용지를 설정하는 시가화조정구역은 짧게는 5년에서 길게는 22년까지 유보할 수 있도록 법령으로 돼 있어 개발제한구역으로 묶는 것과 별반 다를 바가 없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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