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택지의 확대일까 과도한 상술일까. 한국 뮤지컬 시장의 특징 혹은 문제로 거론되는 '멀티 캐스팅' 이야기다.
일인다역이 한 배우에게 극 중 다수 캐릭터를 맡기는 것이라면 멀티캐스팅은 극 중 한 개 캐릭터를 여러 배우가 연기하는 것을 말한다. 10여 년 전까지만 해도 한 명의 배우가 한 개 캐릭터를 담당하는 '원 캐스트'나 주인공 캐릭터 1~2개만 두 명의 배우가 나눠 하는 '더블 캐스트'가 보편적이었다.
요즘은 원 캐스트 작품이 화제가 될 만큼 멀티캐스팅이 대세다. 많은 대형 뮤지컬은 주인공을 포함한 주요 캐릭터 4~5개를 더블(2명), 트리플(3명) 캐스트로 가져간다. 인기리에 공연 중인 뮤지컬 '팬텀'과 '지저스크라이스트 수퍼스타'는 팬텀과 유다 역을 각각 3명의 배우가 하고, '체스'는 주인공인 러시아 챔피언 아나톨리 역을 4명이 연기하는 이른바 '쿼드러플' 캐스트다. 지난 2012년 3월 공연한 뮤지컬 '캐치 미 이프 유 캔'은 주인공 프랭크 역에 무려 5명을 캐스팅해 이름도 생소한 '퀸투플(quintuple) 캐스트'를 선보이더니, 그해 12월 재공연에선 1명의 프랭크를 더 추가한 '섹스투플(sextuple) 캐스트'로 화제를 모았다. 이런 식이라면 언젠가 한 배역을 7~10명이 맡는 셉투플(Septuple·7), 옥투플(Octuple·8), 노누플(Nonuple·9), 데큐플(Decuple·10) 캐스트가 나올지도 모를 일이다.
멀티캐스팅을 옹호하는 쪽에선 '선택의 폭'을 넓히고 다양한 무대를 선보일 수 있다고 말한다. 페어(pair·특정 공연일에 함께 연기하는 주요 배우) 별로 연기·노래의 느낌이 달라서 관객에게 다양한 관점에서 작품을 즐길 수 있게 한다는 것이다. 반면 '멀티캐스팅은 과도한 상술'이라는 지적도 많다. 스타 배우나 아이돌 가수 여럿을 한 배역에 몰아넣어 티켓 판매에서 유리한 고지를 점할 수 있지만, 많은 배우가 합을 맞출 기회가 줄어들어 작품의 질을 떨어뜨리게 된다는 게 요지다. 전체 공연 일정 중 일부를 주연배우 대신 담당하는 얼터(Alternative) 배우, 유사시 주연배우 대신 무대에 오르는 언더 스터디가 무대에 설 기회도 점점 사라져 '새로운 스타 발굴'이 어려워지고 있다는 비판도 있다.
미국 브로드웨이는 원 캐스트를 기본으로 한다. 다만, 2~3달 반짝하는 한국과 달리 장기 공연이 정착된 곳이기에 한 명의 배우가 주 8회 공연 중 5~6회를 맡고 나머지는 얼터 배우가 대신하는 식으로 작품을 운영한다.
브로드웨이가 무조건 옳고, 멀티캐스팅이 무조건 나쁘다고 볼 수는 없다. 그러나 한 달 남짓한 짧은 공연조차 너덧 명이 한 배역을 나눠 맡는 일부 사례는 마냥 개운치 않은 게 사실이다. '호기심으로서의 상술은 길게 못 간다.' 는 한 뮤지컬 제작사 대표의 말이 떠오르는 대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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