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증권사들이 홍콩항셍중국기업지수(HSCEI·홍콩H지수)를 활용한 주가연계증권(ELS) 발행을 당분간 중단하기로 했다. 홍콩H지수를 활용한 ELS의 쏠림 현상이 심해 자율적으로 결정했다고 한다. 증권사들이 '자율적'이라는 단어를 사용하고 있지만 실상은 금융당국이 최근 각 증권사에 홍콩H지수를 활용한 ELS 발행을 중단하라고 '권고'한 결과다. 금융당국의 권고를 무시할 수 있는 금융사는 없다.
홍콩H지수는 홍콩 증시에 상장된 중국 기업 40곳의 주가를 지수화한 것이다. 구성 종목들의 시가총액은 전체 홍콩증권거래소 시가총액의 20% 이상을 차지한다. 이 지수를 추종하는 상장지수펀드(ETF)가 독일·영국·한국 등 전 세계에 상장돼 있고 다수의 글로벌 금융회사에서 금융상품을 개발할 때 벤치마크 지수로 활용한다.
국내에서도 적극적으로 활용되고 있다. 금융위원회에 따르면 올 상반기 총 파생결합증권(ELS·DLS·DLB 포함) 발행잔액은 지난 2010년보다 4.2배 늘어난 94조4,000억원으로 이 중 홍콩H지수를 기초자산으로 활용한 파생결합증권의 38%인 36조3,000억원에 달한다.
당국은 이를 쏠림 현상으로 보고 있지만 바꿔 말하면 홍콩H지수의 상품성이 그만큼 높다고 볼 수 있다. 시장 전문가들은 홍콩H지수는 유럽이나 미국 증시의 대표 지수들보다 변동성이 커 수익 창출 기회가 더 많다고 입을 모은다. 국내 기준금리가 1.5%로 초저금리인 상황에서 조금이라도 높은 수익을 찾아 시중 자금이 쏠리고 있다. 시장의 당연한 흐름인 것이다.
설사 쏠림 현상에 따른 리스크 관리가 시장 논리를 거스를 만큼 시급하다는 금융당국의 판단이 옳았다고 하더라도 시기와 방법은 문제다. '차이나 쇼크'로 신흥국 증시가 동반 약세를 보이면서 ELS를 비롯한 다양한 금융상품들이 손실이 날 위험에 처해 있는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홍콩H지수가 많이 떨어져 더 하락할 가능성이 적다고 보는 투자자들은 지금을 투자기회로 삼을 수 있다. 금융당국의 극단적 조치는 투자기회를 찾는 금융 소비자들의 기회 자체를 박탈해버렸다.
방법 역시 잘못됐다. 쏠림현상이 문제라면 증권사별로 홍콩H지수를 활용한 파생결합증권 비중을 줄이는 방식으로도 해결할 수 있다. 마치 큰일이라도 난 것처럼 즉각 발행을 중단하라고 하면 시장의 불안감은 오히려 증폭된다.
특히 정부가 나서 특정 국가의 지수나 상품에 대해 문제 삼는 것은 자본 시장의 근간을 뒤흔들 수도 있다. 투자문화에 왜곡이 나타날 수 있기 때문이다. 금융 투자는 원금을 보장하는 은행예금이 아니다. 원금 손실의 위험을 감수하고 은행금리보다 높은 수익을 좇는 것이 금융 투자의 기본이다. 다소 과장된 우려일 수도 있지만 이번 조치는 외교 문제로 비화할 가능성도 있다. 입장을 바꿔 생각해보자. 중국 금융당국이 한국의 코스피200지수를 활용한 금융상품 발행을 금지한다면 국민들은 어떻게 반응할까. 한국 증시를 무시한다는 모멸감에 반중감정이 확산되고 중국 금융 시장에 대한 불신이 커질 것이 뻔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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