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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화인데도 파스텔 그림처럼 담백한 느낌, 먹이 번지는 수묵화 같은 해체적인 형태, 그리고 푸르스름한 분위기. 한국 현대미술 1세대 작가로 꼽히는 화가 남관(南寬ㆍ1911~1990)의 작품세계다. 그의 20주기를 기념하는 전시가 강남 신사동 필립강 갤러리와 양재동 아뜰리에 705에서 한창이다. 경북 청송에서 태어난 남관은 광복 전 일본 도쿄의 태평양미술학교에서 서양미술을 배운뒤 1940년대와 1950년대 초반까지는 자연주의적 소재를 다뤘다. 한국전쟁 직후인 1954년부터 1968년까지 파리에서의 14년은 남관을 추상미술작가로 바꿔놓았다. 그는 1966년 망통국제비엔날레에서 피카소, 타피에스 등 거장을 제치고 대상을 받으며 외로운 타향에서 작가의 길을 개척했다. 귀국에는 홍익대 강단에 섰고, 1988년 서울올림픽 공식 예술판화와 포스터를 제작하기도 했다. 남관의 이른바 '문자 추상'은 문자가 지닌 추상성에 인간의 희로애락을 담은 것으로, 마치 상형문자 처럼 볼수록 해독할 무언가가 더 있을 것 같은 여운을 남긴다. 일찍이 세계적 미술평론가 가스통 디일은 "동서양 문화의 어느 쪽도 희생시키지 않으면서 둘을 융합한 위대한 작가"라 평했다. 작품 가격은 남관의 미술사적 업적에 비해 상대적으로 저평가됐다는 게 업계의 분석이다. 남관의 프랑스 활동시기와 그 이후 작품은 필립강 갤러리에서 21일까지, 아뜰리에705는귀국 이후의 작품을 중심으로 13일까지 전시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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