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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선주 국립외교원 교수
흔히 세계는 급변하고 있다고 말한다. 변화의 소스는 다양하지만 외교의 관점에서 볼 때에 가장 큰 변화의 소스는 국가들의 부침, 특히 미-중 G2로 불리우는 세계의 등장이다. 도래하는 G2 시대는 정도 상의 차이는 있어도 전 세계 모든 국가들에게 어떻게 대응할 것이냐라는 고민을 안겨주고 있다. 더욱이 한국은 이 문제를 매우 가까이에서 겪는 몇 안되는 국가 중의 하나이어서 고민이 더 깊다. 한국에게는 그 어느 때보다도 창조적이고 능동적인 외교가 필요하다. 이러한 상황에서 최근에 한국은 외교사에서 유례없는 첫걸음을 내딛었다. 그것은 바로 믹타(MIKTA)라고 불리우는 멕시코, 인도네시아, 한국, 터키, 호주로 구성된 중견국 협의체를 2013년에 결성한 것이다. 그동안 주변 강대국들과의 관계에 집중하면서 공식 국제기구 외부에서 자발적으로 협의체를 구성하여 외교를 전개한 경험이 거의 전무했던 점을 고려하면 믹타 결성은 한국 외교의 상당한 변화이다. 믹타는 한국 외교의 다변화, 다자화, 다층화 패러다임을 상징한다.
국민들은 한국이 왜 이들 4개 국가와 협의체를 구성하였는지, 스스로 선진국이 아닌 중견국으로 자리매김하려고 하는지 의문을 가질 수 있다. 그러나 이들 국가들을 면면히 살펴보면 G20 참여, 지역적 대표성, GDP 1조 달러 규모의 시장경제, 민주정치, 국제사회로부터의 기대 등에서 다른 듯 비슷하다.
믹타는 지난 5월 22~23일 신라호텔에서 제5차 외교장관회의를 열고 연내 정상회의 개최를 검토하기로 했고 비전을 채택하고 공동성명을 발표했다.
한국은 믹타를 통해서 무엇을 달성하려고 하는가? 세계는 1945년에 미국의 주도로 수립된 국제질서하에서 나름의 안정과 번영을 달성하였다. 글로벌 이슈를 다루는 거버넌스의 중심에는 선진국이 주도하는 UN, IMF와 같은 국제기구가 있어 왔다. 그러한 국제질서와 거버넌스는 새로운 이슈들과 국가들의 성장과의 불일치에서 오는 정당성과 효율성 문제에 직면해 있다. 글로벌 거버넌스가 변화해야 하는 것은 당연한데, 다만 어떤 과정을 통해 어떤 방향으로 변화할 것인지가 문제이다.
한국은 기존 국제질서 속에서 성공적으로 성장하였고 앞으로 더 발전해야 하기에 글로벌 거버넌스 변화가 개방적으로 이루어지게 해야 한다. 한국의 국익과 조화될 수 있는 방향으로 글로벌 거버넌스의 변화를 유도하는 것이 필요하다. 그런데 한국이 단독으로 글로벌 거버넌스에 영향을 미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므로 같은 입장을 갖고 같은 방향을 향해 협력할 수 있는 파트너가 필요하다. 한국은 믹타에서 글로벌 거버넌스의 상생적인 변화를 함께 추구할 파트너를 찾은 것이다.
기후변화, 개발, 사이버, 통상, 핵비확산 등 글로벌 이슈는 산적해 있지만 해결책을 찾는 것은 쉽지 않다. 이슈 모두가 복합적이고, 국가들은 각기 다른 해결책을 선호하며, 리더십은 숨어버렸다. 그렇다고 하여 글로벌 이슈를 미해결로 남겨두는 것은 모두를 패자로 만들 뿐이다. 선진국들에게 리더십 발휘를 자극하고, 선호하는 해결책에서 국가들의 간극을 조정하는 국가가 필요하다. 한국을 포함하여 믹타 국가들은 글로벌 이슈를 온전히 짊어질 능력을 갖고 있지는 않지만, 일정 부분 해결책 제시와 국가 간 이견 조정에서 신뢰와 리더십 발휘가 가능하다. 그리고 그러한 행위를 통해서 국익도 실현할 수 있다.
믹타가 결성된 후에 한국은 2014년 9월부터 1년간 의장국을 맡아오면서 5차 외교장관 회의를 서울에서 성공적으로 개최하였다. 한국은 신생 협의체인 믹타가 나아갈 방향과 전략에 대한 비젼을 제시하고, 구체적인 이슈에 합의를 유도하는 등 믹타를 주도하고 있다. 이제 남은 것은 믹타의 아이디어를 글로벌 무대로 옮겨 글로벌 거버넌스를 향상시키고 인정받는 것이다.
한국이 믹타를 결성했다고 하여 강대국들과의 기존 관계를 대체하는 것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믹타를 기반으로 한국은 강대국과 단독으로 논의하기 어려웠던 글로벌 거버넌스 이슈도 대등하게 논의할 수 있게 되어 강대국과의 외교는 확대, 격상된다. 한국은 믹타를 통해 기존 질서의 무조건적 유지도, 불확실한 변경도 아닌, 근본 구성요소를 유지하면서 새로운 필요에 맞게 글로벌 거버넌스를 향상시키고자 하며, 그러한 글로벌 거버넌스 기획자(entrepreneur)로서의 한국의 외교적 시도는 이제부터 시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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