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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왕실 사슴 사냥터로 이용 130년전까지 민간인 출입못해
5개 코스 9시간 걷는 비렁길 촛대바위·신선대·매봉 등 장관
국내 최대 '감성돔' 산란지로 토종고래 '상괭이'도 서식
걸치고 있던 외투의 옷깃에 땀이 스몄다. 기온이 서울보다 최소한 4~5도는 높은 듯했다. 전라남도 여수시 신기항에서 타고 온 배가 닿은 곳은 금오도 여천항. 이곳에서 오른쪽으로 방향을 틀어 조금만 가면 함구미항이 나오는데 바로 이 곳이 금오도 비렁길의 시작점이다. 비렁길이 시작되는 곳에서 겉옷을 벗고 가벼운 셔츠차림으로 걷기 시작했는데도 금세 등줄기로 땀이 흘렀다. 몇 발자국 걷지 않아 오솔길 양편에는 제철도 아닌 동백꽃이 난데없이 피어 있었다. 일주일 전 찾은 대전의 대청호 500리길은 단풍이 끝물이었는데 여수 앞바다 금오도는 아직도 가을이 오지 않은 듯했다.
◇조선왕실의 사냥터=금오도는 동백 숲이 우거져 녹색이 짙은 나머지 검은색에 가까웠다. 금오도가 '거무섬'이라고 불리는 이유다. 섬의 모습이 자라와 비슷해 자라 오(鰲)자를 써 '금오도(金鰲島)'라고 불리는 이 섬은 불과 130여년 전까지만 해도 무인도였다. 금오도가 무인도였던 것은 조선시대에는 왕실에서 민간인의 입주를 금지시키고 사슴을 사냥했기 때문이다. 또 섬에서 자생하는 소나무의 재질이 좋아 궁궐 건축에 사용하기도 했다. 최근 기록으로는 1865년(고종 2년) 흥선대원군이 경복궁 중건을 위해 금오도의 나무를 베어 궁궐의 축조에 이용했다고 전한다.
하지만 1884년 태풍으로 금오도의 소나무들이 쓰러지면서 금오도 출입제한이 풀렸고 이듬해부터 사람들이 들어와 살기 시작했다. 수백년간 사람의 발길을 허락지 않던 금오도는 이제 1,600여명의 주민들이 '반농 반어업'에 종사하며 관광으로도 짭짤한 수입을 올리고 있다.
◇비렁길=금오도의 오른편 해안은 경사가 완만해 마을과 도로가 발달해 있는 반면 섬의 왼편은 깎아지른 절벽이 바다와 맞닿아 있다. 이 벼랑 위로 섬의 절반을 걷는 코스가 비렁길이다. 벼랑의 사투리인 '비렁'에서 유래한 이 길은 원래 섬주민들이 땔감을 하러, 혹은 낚시를 하러 다니던 오솔길이었다. 함구미마을에서 시작해 장지마을까지 이어지는 18.5㎞로 모두 5개 코스로 이어져 있으며 도보로는 9시간이 걸린다. 2011년 개통 이후 섬의 명물로 입소문이 나면서 관광객들이 몰리고 있다.
비렁길 1코스에는 송광사 절터, 신선대 등이 볼 만하며 두포에서부터 시작하는 2코스에서는 굴등전망대와 촛대바위가 절경이다.
최점자 해설사는 비렁길 풍광에 대해 "비렁길 5개 코스 중 가장 경치가 좋은 곳은 3코스"라며 "경사가 가팔라 힘들기는 해도 3코스 매봉의 경치가 가장 빼어나다"고 말했다.
출렁다리 왼편 갯바위에서 바라본 매봉은 과연 하늘로 우뚝 솟아 남쪽 바다를 바라보는 모습이 장쾌했다.
비렁길을 돌다 보면 길 아래 갯바위에는 바다를 향해 낚시를 드리운 태공들이 점처럼 찍혀 있다. 배광진 좌수영해운 대표는 "금오도에서 올라오는 어종은 감성돔·참돔·붉은돔·돌돔 등"이라며 "금오도는 우리나라 최대의 감성돔 산란지"라고 말했다.
▲비렁길 5개 코스
1코스 5㎞ (2시간 소요) 함구미~미역널방~송광사 절터~신선대~두포
2코스 3.5㎞ (1시간30분 소요) 두포~굴등 전망대~촛대바위~직포
3코스 3.5㎞ (2시간 소요) 직포~길바람통 전망대~매봉 전망대~학동
4코스 3.2㎞ (1시간30분 소요) 학동~사다리통 전망대~은금통~심포
5코스 3.3㎞ (1시간30분 소요) 심포~먹개~장지
◇금오도 배편=다른 섬들과 달리 금오도는 배편이 다양하다. 섬으로 들어가는 배편은 여수여객터미널에서 금오도 우학으로 들어가는 노선이 하루 2회 왕복하고 있으며 금오도의 함구미로 들어가는 배는 하루 3회 왕복하며 90분이 소요된다.
운항시간을 단축하려면 여수 돌산 신기항을 이용하면 된다. 신기항에서 들어가는 배는 하루 일곱 편이며 25분이 소요된다. (061)665-0011
금오도는 배로 돌아볼 수도 있다. 좌수영해운은 여수시 백야~금오도 함구미 노선의 경우 하절기에는 네 편, 동절기에는 세 편을 운행하며 여수시 백야~함구미~직포는 하루 두 편, 금오도 직포~여수시 백야는 하루 두 편 운행한다.
신기항에서 금오도 여천항으로 들어갈 경우 섬 안에서 택시나 버스를 이용해 비렁길 1코스가 시작하는 함구미로 이동해야 하지만 여수 백야항에서 출발하는 좌수영해운의 금오페리7호와 좌수영1호를 이용하면 바로 함구미항에서 내려 비렁길 트레킹을 시작할 수 있어 편리하다. 또 여수시 백야항~함구미~직포 구간은 도보로 트레킹을 끝낸 관광객들이 바다 쪽에서 금오도의 기암절벽을 바라보기 위해 이용하기도 한다.
배광진 좌수영해운 대표는 "백야항에서 함구미 구간은 우리나라의 토종고래 상괭이가 서식하고 있다"며 "운이 좋으면 이 구간을 지날 때 상괭이가 물 위로 솟구치는 모습을 구경할 수도 있다"고 말했다. /금오도=글·사진 우현석 객원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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