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누리당의 한 소장파 중진의원 사무실에 한 대기업 임원이 방문해 책을 건넸다. 장하준 영국 캐임브리지대 교수가 쓴'쾌도난마 한국경제'다. 당 경제민주화실천 모임 소속으로 재벌개혁을 강하게 요구한 의원 측에 이 임원은"재벌개혁에 대한 다른 생각도 있다"며 읽어보길 권했다. 장하준 교수는 진보진영에 속하면서도 재벌을 인정하자는 입장이다. 이 때문에 진보진영의 다른 경제학자들로부터'재벌옹호론자'라고 공격받곤 한다. 하지만 경제민주화를 위해 재벌해체까지 거론하는 정치권에서 재계는 상대적으로 온건한 장 교수의 주장에 기대는 모습이다.
정치권에 재벌개혁론이 화두가 되면서 재계가 장하준 교수의'재벌인정론'을 정치권에 설파하기 시작했다. 장 교수는'가급적 재벌의 소유권은 건드리지 않고 세금을 더 걷자'고 강조하기 때문이다. 장 교수는 한국 대기업을 외국 대기업으로부터 보호하기 위한 정부의 보호를 어느 정도는 허용해야 한다고 주장하기도 한다. 그는 지난 14일 한 라디오 방송에서 정치권의 재벌개혁 관련 입법 움직임을 향해"재벌 그룹을 깨면 그걸 접수하는 것은 미국이나 영국에 있는 금융자본"이라면서"요즘 걱정이 되는 게 경제민주화를 자꾸 재벌 개혁만으로 환원시켜서 이야기 하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반면 재벌개혁에 장 교수 보다 강력한 목소리를 내온 또 한 부류는 그의 사촌 형 장하성 고려대 경영학과 교수 등이 주장하는 주주자본주의다. 이들은 소액주주운동을 통해 일부 대기업 총수의 전횡을 제한하자고 강조해왔다. 장하성 교수를 비롯해 김상조 한성대 교수, 김기원 방송통신대 교수 등은 장하준 교수의 주장에 부정적이다. 김 교수는 한 언론 인터뷰에서"장하준 교수는 한국 현실, 특히 재벌에 대해 너무나 잘못 알고 있고 공부가 안 돼 있다"면서"그의 사회적 재벌활용론 또는 사회적 대타협론은 가능하지도 않고 바람직하지도 않다"고 비판했다. 새누리당에서도 일부 의원들은 장하성 교수의 주장에 찬성하기도 한다.
새누리당 경제민주화 모임 측은 두 방법론을 모두 들어보겠다는 입장이다.
경제민주화 모임을 주도하는 남경필 의원은 15일 전화통화에서 "장하준ㆍ장하성 교수 쪽과 생각이 비슷한 연사들로부터 강연을 들을 것"이라면서"재벌해체보다는 재벌을 인정하되 지배구조의 집중을 완화하자는 게 경제민주화 소속 의원의 전반적인 생각인 것 같다"고 말했다. 경제민주화 모임은 오는 19일 김기원 교수의 강연을 들을 예정이다. 이들은 경제민주화를 위한 재벌개혁의 방식에 대해 일반인을 대상으로 설문조사 한 결과를 전체 의원을 초청한 토크쇼에서 밝힐 계획이다.
재계 측은 대기업 총수의 오너십을 보호하자는 장하준 교수의 주장에 그나마 무게를 싣는다. 한 대기업 국회 담당자는 15일 기자와의 통화에서"솔직히 장하준 교수도 시장경제주의를 우선하는 학자는 아니지만 오너십을 인정한다는 점에서 장하성 교수의 주장보다는 낫다"면서"일반 의원보다는 이만우ㆍ안종범ㆍ김광림ㆍ강석훈 의원처럼 경제학을 잘 아는 분들이 아무래도 논의를 이끌면서 조정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남 의원은"(대기업 규제 완화 목소리가 높았던)예전과 달리 지금 대기업 입장에서는 장하준 교수가 구세주 아니겠나"라고 말했다.
< 저작권자 ⓒ 서울경제,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