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정부의 위안화 국제화의 로드맵은 지난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이미 구체화되고 있다. 2009년 3월23일 저우샤오촨 인민은행 총재는 달러가 '트리핀의 딜레마'에 갇혀 있다고 비판하며 달러화 대신 국제통화기금(IMF)의 특별인출권(SDR)을 기축통화로 채택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당시 미국ㆍ영국ㆍ일본 등은 이 같은 주장을 미국 국채를 가장 많이 보유한 나라의 투정 정도로 받아들였다. 하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중국은 상하이 등 5개 시범도시 내 홍콩ㆍ마카오 기업들의 위안화 무역결제를 허용하며 위안화 국제화 로드맵의 시작을 알렸다.
그해 중국 CCTV가 방영한 다큐멘터리 '화폐전쟁의 진실과 미래'는 위안화 국제화에 대한 중국 정부의 의지를 한마디로 요약했다. CCTV는 "한 국가의 국력이 진정으로 강성해지면 개인의 의지가 아니더라도 그 국가의 화폐가 자연스럽게 위대한 화폐, 대국의 화폐가 될 수 있다"고 주장했다. 중국의 굴기는 당연히 위안화의 굴기로 이어져야 한다는 말이다. 김동하 부산외대 중국지역통상학과 교수는 "저우 총재의 말은 위안화 국제화와 팍스시니카로 이어지는 거대한 마스터플랜이 가동되기 시작했다는 점을 전세계에 알린 것"이라고 지적했다.
하지만 중국은 서두르지 않았다. 무서울 정도로 치밀하게 차근차근 위안화 국제화를 향해 갔다. 견제를 의식한 듯 정작 중국 내 싱크탱크들은 30년이라는 위안화 국제화 시간표를 제시했다. 5월 인민은행 통화정책위원인 천위루 인민대 총장은 "(금융의) 개방속도를 지나치게 높이지 말아야 한다"며 "오는 2017년까지 금리자유화, 2020년까지 위안화 자본계정 개방을 이룬 뒤 2040년 이후에나 위안화가 국제화될 수 있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그렇다고 이를 그대로 받아들이는 외국 경제학자나 투자은행은 없다. 이미 리커창 총리가 위안화의 완전태환 방안을 올해 안에 마련하라고 지시했고 상하이자유무역지대(FTZ)에서 위안화 자유환전 허용 등이 거론되는데다 11월 공산당 18기 중앙위원회 3차전체회의(3중전회)에서 위안화 일일 변동폭을 현재 상하 2%로 확대할 가능성도 제기되고 있기 때문이다. 또 최근 영국과의 통화스와프 체결에 이어 유로화와의 통화스와프도 검토되는 상황은 위안화 국제화의 시간표를 앞당길 수밖에 없게 한다.
일단 위안화 국제화의 1차 목표는 엔화와 파운드화 따라잡기다. 지난해 말 기준 위안화의글로벌지수(RII)는 0.87로 전년의 0.58에서 49%나 올랐다. 같은 시기 엔화(4.46), 파운드(3.98)는 전년과 비슷한 수준을 유지했다. 중국 내에서는 2015년이면 위안화가 엔화와 파운드화를 따라잡을 수 있을 것으로 전망한다. 브릭스(BRICs), 동남아국가연합(ASEANㆍ아세안), 상하이협력포럼, 아프리카연맹 등 중국과 우호적인 경제체제의 무역거래에서 위안화 결제가 대폭 늘어나고 있는 만큼 지표상으로도 2년이면 충분히 엔화와 파운드화는 넘어선다는 분석이다. 취홍빈 HSBC 수석 이코노미스트는 "2015년 중국 무역의 30%가 위안화로 결제된다면 위안화는 달러ㆍ유로와 함께 세계 3대 글로벌 결제통화가 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위안화 국제화의 2단계는 동북아시아에서 돌파구를 찾는 것이다. 천 총장도 국제기구를 통한 위안화 국제화보다 지역 내, 특히 한국과 일본과의 위안화 무역결제 비중을 높이는 것이 우선이라고 지적한다. 궁극적으로 한중일 3국 간 통화통합이라는 비전이 제시되기는 하지만 현재 상황에서는 3국 간 무역결제의 중심화폐로 달러와 함께 위안화가 대안이 될 수 있다는 것이다. 우리나라의 위안화 수출무역 결제는 올 상반기 11억2,810만달러로 러시아 루블, 영국 파운드화를 제치고 8위로 올라섰다. 위안화는 1994년부터 수출결제 통화로 이용돼 2010년 비중이 간신히 0.1%를 넘었으나 지난해 0.2%, 올 상반기에는 0.4%로 올라섰다.
중국 정부가 위안화 국제화 로드맵에서 가장 조심하는 것은 엔화와 같은 오류를 범하지 않겠다는 것이다. 1980년대 일본은 세계 2위 경제권으로 올라섰지만 1985년 미국의 압력 속에 플라자 합의로 자본시장을 개방해 거품경제를 만들며 엔화의 국제화에 실패했다. 전문가들은 중국이 일본과 같이 미국의 압력에 굴복하지 않기 위해서는 내수를 키워 미국 의존도를 줄여야 한다고 지적한다. 천 총장은 "리코노믹스가 내수에 중점을 두는 이유 중 하나가 미국 수출 의존도를 줄이기 위함"이라며 "안정적 내수는 위안화 국제화의 든든한 버팀목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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