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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의 눈] 기업은행, 저축은행 매각 들러리인가

예금보험공사가 지난달 29일 마감한 예한별저축은행 인수의향서(LOI) 접수명단에서 의외의 이름을 발견했다. 바로 기업은행. 기은은 신한금융지주ㆍ러시앤캐시와 함께 LOI를 냈다. 반면 예쓰저축은행은 한 곳만 LOI를 제출해 유찰됐다.

기은이 저축은행을 인수하겠다며 나선 것은 처음이 아니다. 지난 7월 실시됐던 미래저축은행 본입찰에도 제이트러스트와 함께 참여했다. 2개사 이상이 참여한 덕분에 유효경쟁이 성립됐고 결국 제이트러스트가 가져갔다.

하지만 금융계 인사 중 기은이 저축은행을 인수할 의지를 가졌다고 보는 사람은 한 명도 없다. 실속이 없는 까닭이다. 금융회사들은 그동안 예보가 실시했던 저축은행 매각에서 모두 은행이 아닌 지주가 입찰했다. 이유는 간단하다. 지주체제를 갖춰야 계열사 간 고객정보를 공유할 수 있어 시너지를 낼 수 있기 때문이다.

기업은행은 지주회사 체제를 갖추고 있지 않다. IBK캐피탈ㆍIBK자산운용 등 자회사들을 거느리고 있지만 아직 지주체제가 아니다. 따라서 현재도 자회사 간 고객정보를 공유하지 못하며 저축은행을 인수해도 사정은 마찬가지다.



그런 기은이 왜 두 차례나 저축은행 인수전에 참여했을까. 금융가에서는 당국이 복수입찰이라는 유효경쟁 요건을 충족시키기 위해 기은을 들러리로 활용한 것 아니냐는 해석을 하고 있다. 금융위도 기은이 저축은행 인수 시너지가 없다는 사실을 이미 알고 있지만 단독입찰에 따른 유찰을 막기 위해 기은을 동원했다는 것이다. 당국은 물론 기은 관계자들조차도 적극적으로 부인하지 않는다. 당국의 입김이 여전히 센 사실상의 국책은행이면서 일반 시중은행 성격도 강한 기은은 매우 편리하고 겉모습도 괜찮은 캐스팅 대상이다.

이런 추론이 사실이라면 참으로 부끄러운 일이다. '저축은행 매각 이벤트'에 구태여 기은을 단골 들러리로 초청하는 것은 속도가 최우선이라는 당국의 고집 때문이다. "적절한 인수자를 찾느라 시간을 오래 끄는 것보다는 신속히 주인을 찾아주는 게 중요하다"는 금융위 고위관계자의 말도 이와 무관하지 않다. 당국이 이런 생각을 고쳐 먹지 않는 한 기은이 몇 번이나 들러리로 추가 출연할지 알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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