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 같은 그림'이 있는가 하면 '그림 같은 사진'도 있다. 작가 민병헌(56)은 그림 같은 사진을 찍는다. 담담한 회색 톤에 보일 듯 말 듯 뿌연 풍경과 인물은 먹으로 농담을 살린 동양화 같기도, 연필로 슥슥 그린 드로잉 같기도 하다. 청담동 카이스갤러리에서 열리는 그의 개인전은 눈 덮인 세상이 자연의 여백을 형성한 '스노랜드(Snowland)'시리즈와 미묘한 물빛이 섬세하게 표현된 '바다'시리즈,, 신작 인물사진 시리즈 '포트레이트' 등 50여 점을 전시한다. 민병헌의 사진은 디지털 사진의 인위적인 조작을 전혀 가하지 않은 '고집스런' 스트레이트 사진이라는 게 특징이다. 일상적 풍경이고 인물이지만 그의 섬세한 눈에 의해 감각적으로 표현된다. 뒤에서 끌어안아 팔다리가 뒤엉킨 알몸의 남녀에게서는 숨막히는 감동과 속박을 떨친 자유로운 편안함을 음미할 수 있다. '하의실종'패션 마냥 상의만 걸친 여성 인물상은 아찔함을 '고상하게' 투영했다. 민병헌 특유의 회색빛 뿌연 화면은 김 서린 욕실 안에 누드 여인을 가둔 듯 한참을 들여다보며 찾아내게 만든다. 미켈란젤로가 대리석에서 아름다운 인체를 찾아 끄집어낸 것처럼 말이다. 인물 신작은 예전 누드 시리즈에 비해 '덜 노골적'이다. 과욕을 억누르는 이 같은 시도는 그의 작업관과 일맥상통한다. 작가는 풍경사진을 찍을 때면 쨍 하게 맑은 날보다 비나 안개, 바람이 적당히 있는 날을 택한다. 인물을 담을 때도 막을 치거나 초점을 흐려놓는다. 무엇을 찍었는지를 확인하기 보다 어떤 분위기와 뉘앙스를 풍기는지 "그 정도만 봐 달라"는 게 작가의 당부다. 작가는 올해 제 3회 한국미술평론가협회상 창작부문 수상자로 선정됐다. 또 방이동 한미사진미술관에서는 지난달 개막한 개인전이 10일까지 열린다. 하반기에는 프랑스 라갤러리파티큘리에, 영국 포토갤러리에서 기획 초대전이 예정돼 있다. 청담동 카이스갤러리의 이전 재개관전으로 마련된 이번 개인전은 20일까지. (02)511-066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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