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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상장사, 경영투명성이 문제


얼마 전 TV에서 눈에 띄는 광고를 봤다. 대부업체였는데 광고 말미에 자기네 회사가 상장회사라는 사실을 언급하고 있었다. 대부업체에 대한 부정적 인식을 완화하기 위한 것으로 보인다. 이처럼 상장회사는 사회적 신뢰를 상징하기도 하지만 때로는 분식회계 등 스캔들이 끊이지 않는 뭔가 미심쩍은 대상을 연상케 하기도 한다. 요즘 누구나 알만한 대기업조차 오너 경영자의 횡령ㆍ배임이 문제되는 것을 볼 때 '언젠가는 대부업체도 상장회사라는 사실을 광고에 사용하지 않는 날이 오겠구나' 하는 생각도 해봤다.

작년 불공정거래 경영진·대주주 300여명

우리나라는 외환 위기를 겪으면서 상장회사 지배구조ㆍ회계ㆍ공시ㆍ소송절차 등을 개선했다. 그러나 여전히 연간 수십개의 상장회사에서 경영진의 횡령ㆍ배임이 문제되고 회계기준 위반으로 제재를 받는 회사도 매년 10여개를 넘나든다. 지난해 시세 조종 등 불공정거래 행위에 연루된 대주주와 경영진은 300명이 넘었다. 선진국 수준에 맞는 제도 개선이 있었지만 국내 상장회사들의 경영 관행은 요지부동인 것 같다.

상장회사들의 경영 투명성이 나아지지 않는 이유는 무엇일까. 무엇보다 오너 경영자의 마인드가 아직도 부족하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상장회사가 된다는 것은 소수의 창업자가 소유하는 개인회사에서 다수의 투자자가 함께 소유하는 공개회사(public company)로 바뀌는 것을 의미한다. 다수의 투자자들은 대부분 창업자만큼의 전문성과 책임의식을 갖고 있지는 않지만 사업자금을 대고 위험을 공유한다는 점에서 단순한 제3자가 아니라 동업자임에 틀림없다. 그러나 오너 경영자가 투자자를 동업자로 인정하지 않고 상장회사를 개인회사로 생각한다면 아무리 좋은 제도를 도입하더라도 경영 투명성이 개선되기는 어려울 것이다.

경영진의 마인드는 저절로 개선되는 것이 아니다. 회사 안팎에서 경영진을 감시하고 견제하는 기능이 제대로 작동해야만 가능하다. 미국만 보더라도 20세기 들어 의회가 기업 지배구조에 관심을 갖고 법원ㆍ감독당국의 엄격한 관리ㆍ감독이 정착되기 전에는 상장회사 경영진이 연루된 온갖 기업 범죄가 난무했다.

결국 상장회사의 경영 투명성은 경영진의 도덕성에서 출발하지만 그것을 가능하게 하는 사회 인프라의 문제로 귀착된다. 국가의 관리ㆍ감독도 중요하지만 민간기관에서 경영진을 감시ㆍ견제할 수 있어야 한다. 외국처럼 자율 규제기관인 거래소가 '지배구조에 관한 행동규범'을 마련하고 이행 여부를 공시하게 하는 '원칙 준수-예외 공시(Comply or Explain) 방식'의 상장관리가 요구된다.



증권집단소송 지원 등 인프라 확충을

소송비용과 전문성 부족 등으로 실제 활용도가 떨어지는 대표소송과 증권집단소송이 활성화되도록 공익적 목적의 소송 지원기구를 설립하는 것도 검토해볼 만하다. 상장회사에 대해 주주총회 전자투표제를 의무화하고 미국의 투자자문기관인 기관투자가서비스(ISS)나 글래스루이스(Glass Lewis)와 같은 주총 안건 분석기관이 활성화될 필요가 있다. 지금처럼 오프라인에서만 주주총회가 열리고 그나마 특정일에 수백개 상장회사가 동시에 주주총회를 개최하는 상황에서는 개인투자자든 기관투자가든 경영진을 제대로 감시ㆍ견제할 수가 없기 때문이다.

최근 실시된 한국표준협회의 조사 결과에 따르면 경영 투명성이야말로 기업의 사회적 책임(CSR) 경영에 있어 가장 중요한 요소다. 이제 상장회사의 경영 투명성은 더 이상 구호나 미사여구가 아니라 기업의 지속 가능한 발전을 가능하게 하는 생존 수단임을 명심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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