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나라에 가기 위해 지금의 경기도 화성시 당성(唐城) 근처까지 왔던 원효는 이른바 '해골물 사건'을 겪은 후 모든 것은 마음에 달렸다는 것을 깨닫고 유학을 포기한다. 661년 원효가 당나라행 배를 타러 당성에 가려 한 것은 이곳이 서해 항로의 중요한 기착점이었기 때문이다. 무역선들은 백령도까지 올라간 후 산동반도와의 최단거리인 서해중부 횡단항로를 이용했다. 신라는 553년 한강하류 유역을 백제로부터 탈취한 뒤 중국과의 교류를 위한 항구를 만들고 성을 쌓았는데 지금의 당성이다. 신라때는 당항성(唐項城)이라고 불렀다. 성곽은 둘레가 1,200m로, 해발 165m의 구봉산을 끼고 있다. 삼국항쟁기 신라에는 해외지역과의 교통을 위한 사활이 걸린 출입구였다. 그리고 통일신라시대에도 역시 중요항구로 기능했다. 당성이 쇠퇴한 것은 신라말 지금의 개성지역을 중심으로 왕건 세력이 부상하면서다. 고려시대 예성강 하구가 서해 항로의 중심지가 되고 당성은 차차 잊혀졌다. 사진은 당성내 가장 높은 위치인 망해루터에서 서해를 본 모습. 현재 지형으로 바다는 4㎞ 정도 떨어져 있다. 신라시대에는 더 가까웠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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