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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책은행 'CEO 리스크'로 몸살

정책 방향·경영평가 따라 수장 잦은 교체<br>업무공백으로 부실 이어져


금융공기업 최고경영자(CEO)들은 사석에서 "임기를 꼭 마치는 게 목표 가운데 하나"라는 말을 종종 한다. CEO임에도 사실상 청와대가 임면권을 쥐고 있다 보니 정책방향에 맞지 않거나 경영평가가 좋지 않을 경우 언제든지 교체될 수 있다는 불안감이 그대로 녹아 있다.

문제는 CEO가 자주 바뀌는 것 자체로 기업에는 리스크로 작용한다는 점이다. 중소기업 육성이나 서민금융 확대 등 공공의 임무를 띤 정책금융기관은 더욱 그렇다. 실적으로 평가를 받다 보니 다소 무리한 정책을 들고 나오기도 한다.

국책연구소의 한 연구위원은 "정책금융기관 CEO가 임기를 마치는 것보다 여러 이유로 임기를 마치지 못하는 경우가 더 많다"면서 "심지어 임기를 2~3개월 앞두고 바뀌는 사례도 있다"고 말했다. 민유성 전 산은금융지주 회장은 임기를 2개월 앞두고 하차하기도 했다.

외국투자가는 투자기업을 평가할 때 CEO가 자주 교체되는지 여부, 즉 CEO 리스크에 주목한다. 아무리 뛰어난 기술력을 갖고 있더라도 CEO가 자주 바뀌는 곳은 투자 대상에서 아예 제외시키는 경우도 많다. 경영의 안정성을 담보할 수 없으므로 투자 리스크가 커질 수 있다는 이유에서다.

잦은 CEO 교체로 CEO 리스크가 부각된 사례로는 정부 지분율이 56.97%에 이르는 우리금융을 들 수 있다. 성격은 시중은행이지만 공적자금이 투입됐다는 점에서 광의의 국책은행이라 할 수 있다.



지난 1999년 1월 상업은행과 한일은행 간 합병으로 우리은행(합병 직후 한빛은행)이 탄생한 후 11년 동안 거쳐간 은행장만도 무려 6명. 평균 재임기간은 2년 안팎이다. 2001년 3월 우리금융그룹 출범 이후에는 지주사 회장과 은행장의 분리와 통합을 반복하기도 했다. CEO 리스크가 한동안 지속됐다는 얘기다. 최근에야 안정을 되찾았지만 우리금융은 CEO 교체에 따른 경영방침의 잦은 변화로 부동산 프로젝트파이낸싱(PF) 비율이 다른 은행보다 높았다.

정책금융기관의 수장은 연임이 사실상 어렵다 보니 장기적인 안목으로 전략을 짜기도 어렵다. 그렇기 때문에 단기 성과주의에서 비롯되는 부작용이 적지 않다.

올해 대통령선거가 끝난 뒤 정권이 바뀌면 상당수 정책금융기관의 CEO 리스크는 더욱 증폭될 것으로 전망된다. 정책방향 역시 정권의 철학에 맞춰야 하는 만큼 기존 방향과는 다른 흐름을 가지고 갈 수도 있다. 전임 CEO가 추진하던 정책은 뒤로 밀릴 수밖에 없고 새로운 CEO는 차별화를 위해 조직개편과 새로운 어젠다를 들고 나오는 경우가 많아 내부조직이 흔들릴 수밖에 없다.

정책금융기관 수장을 지내고 퇴임한 한 전직 고위관료는 "국책은행은 정부 눈치를 보면서 정권의 철학을 뒷받침하는 역할에 매몰될 수밖에 없다"면서 "다른 목소리를 내는 것은 CEO직을 걸어야 가능할 정도"라고 전했다. 그는 이어 "정권의 철학과 기관의 실적에 부합될 수 있는 접점을 찾기도 하지만 그렇지 않은 경우도 많다"면서 "CEO가 자주 바뀌는 정책금융기관의 실정은 뻔하지 않겠냐"고 반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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