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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항공 객실승무원 김재춘(49) 선임사무장에게 장애학생 고은(가명)양은 친딸처럼 애틋한 존재다. 김 선임사무장이 10년 전 경기 일산 소재 홀트복지타운에서 만난 고양은 시각·지체장애에 정신지체까지 안은 애처롭기만 한 어린 소녀였다. 매달 홀트복지타운 내 중증장애 숙소에서 청소하고 목욕을 돕는 봉사를 하면서 친해진 고양은 커가면서 점차 시력 일부도 되찾고 보행 보조기에 의지해 걸을 수도 있게 됐다. 비록 평생 장애를 안고 살지만 거친 세상을 이겨나가는 고양을 보면서 김 선임사무장은 감동과 행복을 느낀다. 그는 서울경제신문과의 인터뷰에서 "장애아이들을 돕고 있지만 오히려 그 아이들로 인해 마음이 따뜻해진다"고 말했다.
김 선임사무장이 아무 조건 없이 봉사하자는 취지에서 대한항공 내 봉사모임인 '다솜나눔회'를 결성한 것은 지난 1998년. 매달 두 차례씩 장애아이들을 돌보는 일을 16년 동안 이어왔다. 회원 중 20명 안팎의 봉사자들이 주로 홀트복지타운을 찾아 하루 동안 중증장애 아동·청소년들을 돌보고 같이 놀아준다.
그는 "승무원들의 업무 스케줄을 피해 함께 봉사하는 날을 잡기도 쉽지 않다"며 "묵묵히 봉사하자는 마음으로 시작했던 만큼 같이 모이기 힘들면 혼자라도 가서 도왔다"고 말했다.
홀트복지타운에는 돌봐줄 가정이 없는 장애인 270여명이 생활한다. 김 선임사무장과 봉사회원들은 주로 '사랑아랫동'으로 불리는 중증장애인 반을 돌본 탓에 장애증상이 심해지거나 세상을 떠나는 안타까운 광경을 목격하기도 한다.
김 선임사무장은 "장애가 심한 아이들이 간질 등 증상이 갑자기 나타나 하늘나라로 가는 것을 보면 가슴이 아프다"며 "가끔 장례식장에서 돌보던 아이들을 떠나 보내며 울먹이는 홀트 직원과 선생님들의 모습에서도 사랑과 인생의 의미를 다시 생각하게 된다"고 전했다.
봉사모임은 홀트복지타운 아이들과 불우 청소년들을 위해 2008년부터 매년 송년의 밤 행사를 열고 서울 강서지역에서 결손가정 청소년들을 돌보는 '젬마의집'에도 도움의 손길을 내주고 있다. 매달 일정금액도 기부하고 있다. 최근 그의 나눔실천이 높이 평가돼 보건복지부장관상도 받았다.
그는 "나눔이 어렵다고 생각될 수 있지만 일단 어려운 이들과 손을 잡게 되면 그 온기로 인해 나누는 사람도 함께 행복해진다"고 강조했다. 나눔에도 이른바 '주고받기(give & take)'가 있다는 주장이다. 그는 2년 전 47세에 만혼을 이뤘다. 당시 결혼식장에서 홀트장애인합창단 '영혼의소리'가 축가를 불렀는데 식장 하객들은 한동안 가슴이 먹먹해지는 감동에 휩싸였었다. 김 선임사무장과 합창단의 친분은 영혼의소리가 2009년 오스트리아에서 열린 국제합창대회에 참가했을 때 대한항공·중외제약 등 기업들이 비행기표값 등 경비를 후원했고 당시 김 선임사무장이 거동이 불편한 합창단원들을 돌봤던 것이 계기가 됐다.
김 선임사무장은 아직 돌도 안된 아이를 돌보는 바람에 최근 봉사를 많이 하지 못했다며 "아이가 좀 크면 장애아동들과 거리낌 없이 함께 놀도록 할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또 "장애인들에 대한 봉사가 처음에는 어색하고 어렵게 생각되지만 일단 시작하면 누구나 하는 취미나 놀이처럼 느껴질 것"이라며 "거룩한 봉사보다는 '재미있는 일상'으로 보여졌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이어 "경기침체로 모두가 힘들지만 주변의 어려운 이웃을 위해 모금 자동응답전화(ARS) 버튼이라도 선뜻 누르는 사람들이 많아졌으면 하는 바람"이라고 덧붙였다.
김재춘(가운데)대한항공 선임사무장이 2012년 연말 홀트 체육관에서 가진 송년회에서 촛불을 들고 복지시설 청소년들과 덕담을 주고받고 있다. /사진제공=김재춘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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