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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국이 자초하고 이제 와 창구지도… 총량제어 속수무책

■ 고삐 풀린 가계대출

LTV·DTI 완화하자 경기 살아나지 않고 빚만 늘어

안심전환대출로 손해 본 은행, 변동금리 주담대 확대

추가 금리인하 기대에 대기수요 많아 대출 폭증 우려


가계부채가 다시 폭증세를 띠며 고삐 풀린 망아지처럼 제어가 안 되고 있다. 올 1·4분기 역대 최대치로 증가한 데 이어 지난 4월 가계대출 증가폭도 10조원에 육박해 신기록을 쓸 것으로 보인다. 금융감독원은 급기야 이달 11일 3개 시중은행 부행장들을 긴급 소집해 "경쟁적 대출을 줄이라"는 창구지도까지 나섰다.

문제는 가계대출 증가세를 잡을 뾰족한 방법이 없다는 것이다. 기준금리 추가 인하 가능성이 거론되는데다 부동산 시장에는 훈풍이 불고 저금리로 주탬담보대출을 빌려 생활자금으로 쓰는 수요까지 늘고 있다. 여기에 은행들은 안심전환대출로 생긴 손실을 메우기 위해 변동금리 주담대 확대에 다시 시동을 걸고 있다. 일부 은행의 변동금리 주담대 금리는 2.6%대 수준까지 내려와 파격적인 안심전환대출 금리와 별 차이가 없다.

이 같은 가계대출의 급증세는 사실상 정부가 자초한 것이다. 지난해 8월 경기부양을 위해 주택담보인정비율(LTV)과 총부채상환비율(DTI)을 완화한 후 가계대출 증가폭이 너무 가파르다. 전체적으로 경기는 살아나지 않는데 부채만 늘어나는 악순환이 반복되고 있는 것이다. 여기에 변동금리로 쏠린 가계부채의 구조를 바꾸겠다고 도입한 안심전환대출 역시 가계부채 총량 제어에는 되레 '독'이 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오고 있다.

금융감독원에 따르면 시중은행의 주담대(유동화 잔액 포함)는 올해 들어 3월까지 무려 9조8,000억원(유동화 잔액 포함)이 증가했다. 2008년 이래 비수기인 1·4분기에 이렇게 가계대출이 증가한 전례가 없다. 4월 들어 본격적인 이사철이 시작된 가운데 가계대출은 또다시 신기록을 세울 것으로 보인다.

서울경제신문 전수조사 결과 국민·신한·우리·하나·농협은행 등 국내 주요 5대 은행의 주담대가 4월에만 6조1,695억원이 늘었다. 마이너스대출 등을 포함한 전체 가계대출 증가폭은 8조527억원에 달한다. 이들 5개 은행이 가계대출 시장의 약 80%를 점유하고 있는 것을 감안하면 은행권 전체적으로 10조원 안팎의 가계대출 증가세가 예상된다. 은행 가계대출이 한 달에 7조원 이상 증가하는 것은 유례가 없던 일이다. 4월 한 달 동안에만 1·4분기에 늘어난 규모와 맞먹는 가계대출이 증가하는 것이다.



금융당국은 올해 변동금리를 고정금리로 바꾸는 안심전환대출을 통해 가계부채의 구조개선에는 어느 정도 성공했다. 하지만 가계대출 총량 제어에는 전혀 손을 대지 못하고 있다. 금감원이 시중은행 부행장들을 소집해 "가계대출 확대 경쟁을 줄이라"는 경고를 보낸 것도 구두개입 말고는 마땅한 제어수단이 없기 때문이다.

특히 은행에 손실을 입힌 안심전환대출이 되레 가계대출 총량 확대라는 부작용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관측이 나온다. 은행들은 기존의 변동금리 대출을 고정금리로 전환하는 안심전환대출로 인해 평균적으로 90bp가량의 금리 차익을 손해 본 것으로 집계되고 있다. 가장 덩치가 큰 국민은행의 경우 무려 8조8,000억원 규모의 주담대 자산을 주택금융공사에 넘긴 후 금리 손실을 감수하고 주택저당증권(MBS)을 매입해야 한다. 각 은행별로 올해에만 감당해야 할 손실 규모가 50억~300억원에 달하는 것으로 추산된다.

이에 따라 은행들은 손실을 메우기 위해 다시 변동금리 주담대 확대에 시동을 걸고 있다. 변동금리 주담대는 은행 입장에서 가장 안전하고 수익이 보장되는 대출이다. 시중은행의 한 고위임원은 "은행 입장에서는 대출자산이 한꺼번에 사라졌는데 이를 어느 정도는 회복해야 하고 손실도 줄여야 한다"며 "경기 불확실성으로 인해 기업대출을 늘리기 어려운 상황에서 은행이 늘릴 수 있는 자산은 가계대출밖에 없다"고 말했다.

가계대출의 가파른 증가세는 하반기까지 지속할 가능성이 높다. 기준금리 추가 인하 가능성이 거론되는 가운데 은행 창구에서는 추가로 금리가 인하될 경우 대출을 받겠다는 대기수요도 증가하고 있다. 경기악화로 생활자금을 마련하기 위한 대출이 늘어나고 있다는 점을 감안하면 가계부채 총량 증가는 '부채의 질이 함께 악화된다'는 측면에서 결코 가볍게 볼 일이 아니다. 시중은행의 한 영업담당 부행장은 "정부가 인위적으로 변동금리를 고정금리로 바꾸는 정책을 시행한 후 고정금리 대출을 찾는 수요는 거의 사라진 가운데 변동금리 중심으로만 대출이 폭증하고 있다는 점도 역설적인 일"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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