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른바 '중국 함정'에 빠진 남미 국가들이 새로운 경제 모델 찾기에 안간힘을 쓰고 있다. 남미 국가들은 글로벌 경제 둔화에다 중국 수요 감소로 원자재 수출이 줄면서 경상수지 적자, 외환보유액 감소, 통화가치 하락, 저성장 등 동시다발적인 악재를 겪고 있다. 특히 중국이 수출에서 내수 중심으로 성장 패러다임을 전환하면서 과거처럼 대중 원자재 수출에 의존하다가는 장기 저성장 국면에 들어갈 것이라는 위기감이 크다. 이 때문에 브라질 등은 수출 상품 다변화, 재정긴축 등 경제 체질 개선에 나서는 한편 유럽과 자유무역협정(FTA) 체결, 미국과 외교관계 개선 등도 서두르고 있다.
◇양날의 칼이 된 중국 의존형 경제= 최근 국제 원자재 가격 폭락은 남미 국가에 전방위 타격을 가하고 있다. 원자재가 전체 수출의 60%를 차지하는 브라질의 경우 지난해 40억 달러의 무역적자를 기록할 것으로 전망된다. 브라질의 무역적자는 2000년 이후 처음이다. 원자재 수출 비중이 3분의2에 달하는 콜롬비아와 페루도 올해 경상적자가 국내총생산(GDP)의 5%에 이를 것으로 보인다. 외환위기를 겪었던 1990년대 이후 최악의 규모다. 특히 대두가 주요 수출 품목인 아르헨티나, 원유 생산국인 베네수엘라는 외환보유액이 줄면서 디폴트(채무불이행) 위기에 시달리고 있다.
미국 컬럼비아대의 호세 안토니오 오캄포 교수는 "원자재 가격이 2003년 수준으로 떨어지면 전체 남미 국가의 경상적자 규모는 GDP의 7%로 치솟을 것"이라며 "이는 3,500억 달러에 이르는 금액으로 남미 지역에 어마어마한 리스크"라고 우려했다. 아울러 경상수지 적자 등의 여파로 통화가치가 절하되면서 인플레이션 압력이 커지자 성장 둔화에도 불구하고 오히려 기준금리를 올려야 하는 상황으로 내몰리고 있다.
더 근본적인 문제는 중국 등에 원자재를 수출해 벌어들인 달러로 내수를 부양하던 경제 모델이 한계에 이르렀다는 점이다. '세계의 공장'이던 중국이 내수 위주의 성장 전략을 펴면서 글로벌 경기가 살아나더라도 과거와 같은 중국 특수는 기대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더구나 값싼 중국 공산품이 몰려들면서 남미 제조업 기반까지 망가진 실정이다.
◇시험대에 오른 중국-남미 밀월 관계= 올해 들어서도 중국은 경제 위기에 시달리는 남미 국가들에게 구원투수로 등장했다. 최근 중국은 베네수엘라와 에콰도르에 각각 200억 달러, 75억 달러 등 총 275억 달러를 지원하겠다고 밝혔다. 중국은 지난해에도 아르헨티나와 110억 달러 규모의 통화 스와프를 체결했다.
하지만 속내는 다소 복잡해졌다는 지적이 나온다. 중국은 미국의 대중 포위 전략을 뚫기 위해 남미 지역을 지속적으로 공략해야 하는 입장이다. 반면 중국 경기 둔화에다 원자재 가격 하락 등의 여파로 에너지 확보를 위한 남미의 경제적 매력은 다소 떨어진 상황이다.
또 이미 1,000억 달러를 대출해줬는데 베네수엘라, 에콰도르 등이 디폴트될 경우 돈을 떼일 우려가 있다. 파이낸셜타임스(FT)는 "중국은 과거 아프리카 자원 부국에 '백지 수표'를 건네며 자원외교를 폈지만 최근 경제난을 겪은 짐바브웨가 지원을 요청하자 거절했다"며 "이는 중국이 남미에 대한 추가 지원을 주저할 수 있다는 신호"라고 전했다.
이 때문에 중국은 남미 투자의 대가로 통신·은행 등에 눈독을 들이고 있다. 시진핑 국가 주석이 지난 8일 앞으로 10년간 중남미 지역에 대한 직접투자 규모를 2,500억 달러로, 상호 교역액도 5,000억 달러로 늘리겠다고 선언한 것도 남미 내수 시장을 염두에 둔 것으로 풀이된다. 하지만 이들 산업은 관련 규제가 강한데다 토호 세력이 장악하고 있어 시장 진출이 만만치 않다는 게 중론이다. 중국과학기술대학의 리렌팡 교수는 "남미 관료들은 항상 외국인 투자를 환영한다고 말하지만 실제 도와줄 수 있는 여지는 제한적"이라고 설명했다.
◇브라질 등 '남북' 협력으로 돌파구= 이처럼 대중 협력이 한계를 드러내자 남미 국가들은 경제 모델 전환을 위해 서구 선진국에 손을 내밀고 있다. 지우마 호세프 브라질 대통령이 지난달 "세계 경제 위기를 극복하려면 중남미와 유럽, 아시아가 협력해야 한다"며 "우선 남미공동시장(메르코수르)은 유럽연합(EU)과 FTA 협상에 속도를 내야 한다"고 주장한 게 단적인 사례다. 브라질은 올해 메르코수르 의장국이다.
미국과 쿠바간의 국교 정상화를 계기로 얼어붙은 대미 관계를 개선하려는 움직임도 활발하다. 실제 이달초 열린 호세프 대통령의 재선 취임식에는 조 바이든 미국 부통령이 참석해 각종 현안을 논의했다. 미 정부의 최고위급 인사가 브라질 대통령 취임식에 참석하기는 1990년 이후 처음으로 다른 남미 정상들과도 관계 개선을 위한 것으로 해석된다. 실제 이 자리에서 바이든 부통령은 대표적인 반미 국가인 베네수엘라의 니콜라스 마두로 대통령과도 인사를 나눴다. FT는 "호세프 대통령이 임기 2기를 맞아 워싱턴과 관계 복원을 원한다는 말을 여러 차례 반복한 반면 베이징 관련 언급은 체면치레에 그쳤다"며 달라진 분위기를 전했다.
지난해 11월 브라질 재계와 미국상공회의소(AMCHAM·암참)도 앞으로 1년 내 FTA 체결을 촉구하는 보고서를 양국 정상에 제출하기로 합의하는 등 미국과 FTA 체결을 위한 분위기 조성에 나섰다. 아울러 일부 남미 국가들은 지지층의 반발을 무릅쓰고 재정건전성 확보 등 경제 개혁을 서두르고 있다. 브라질의 경우 공공 지출 예산을 줄였고 콜롬비아는 세금을 인상하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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