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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의 눈/1월 17일] 왜 하필 '그림 뇌물' 일까

“또 그림이야.” 한상률 국세청장이 차장 시절 전군표 전 청장에게 인사청탁성으로 ‘뇌물성 그림’을 건넸다는 의혹으로 세상이 시끄럽다. 신정아게이트, 비자금 연루 등으로 태풍 속 한가운데 있던 미술계로서는 끊이지 않는 ‘사건들’ 탓에 뒷맛이 영 씁쓸하다. ‘그림=뇌물(?)’의 불명예는 쉽게 지워지지 않을 듯하다. 문화 선진국화되면서 ‘그림 선물’은 자연스럽게 활성화되는 것이라지만 왜 자꾸 그림이 ‘뇌물’로 등장하는 것일까. 현찰이나 보석ㆍ부동산 등과는 달리 애호와 정중함이 담겨있기도 하지만 고상하고 품위 있게 뇌물의 냄새를 선물로 포장할 수 있기 때문이다. 취향에 따라 1,000만원짜리가 1억원의 가치로 보일 수도 있으며 훗날 경제가치로도 매우 돋보인다. 그러나 그런 점들보다 더 탁월(?)한 점은 그림은 유출 경로의 추적이 어렵다는 점이다. 이번에 문제가 된 고 최욱경 화백의 ‘학동마을’도 지난 2005년 K갤러리에서 열린 회고전 도록에 실린 뒤 그 행방이 묘연했다. 언제 누가 누구에게 넘겼는지만 분명하다면 왜 건넸는지 그 의도를 유추할 수 있을 것이다. 사정당국도 이 부분을 추적 중인 것으로 알려져 있다. 또 한가지. 그림 선물을 받은 사람이 “그렇게 비싼 줄 몰랐기 때문에 뇌물이라고 생각하지 않았다”고 발뺌할 수 있는 여지가 크기 때문이다. ‘학동마을’ 판매를 위탁받은 G갤러리의 한 관계자 역시 “위탁자가 그림의 가치를 모른다고 하더라”고 말한 대목이 바로 그 같은 의미다. 그림 거래의 투명성 확보와 위촉감정사 제도의 마련이 필요한 이유가 조세 차원의 문제이기 때문만은 결코 아니다. 유럽에서는 특히 고가의 미술작품에 대해 ‘소장이력’을 분명하게 밝히고 있다. 예를 들어 피카소의 그림 한점에는 진위감정에서부터 거쳐간 소장가 정보까지 20장에 가까운 꼬리표가 족보처럼 따라다닌다. 프랑스처럼 ‘위촉감정사제도’를 마련한다면 그림이 뇌물로 횡행하는 것을 막는 대책이 될 수 있다. 공직자 윤리규정상 500만원 이상의 선물은 신고를 해야 하는 만큼 신원이 보장된 감정사가 받은 작품의 가치를 매겨 신고여부를 결정할 수 있도록 제도를 만들자는 얘기다. 물론 위촉감정사의 본래 역할은 뇌물 감정이 아니라 재산 확인을 통한 세금추징의 근거 마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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