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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원전 위기를 기회로


경부고속도로와 고리 원전 1호기는 어느 것 하나 풍족하지 않았던 가장 어려운 시기에 숱한 반대와 난관을 뚫고 건설됐다. 우리나라의 경제 부흥을 불러온 희망이었고 산업화의 대명사로 통하기도 했다. 특히 국내 원전의 효시인 고리 1호기는 산업화의 역군으로서 그 역할을 톡톡히 수행했다.

올해 초 정전 사고 은폐로 가동이 정지됐던 고리 원전 1호기가 '재가동해도 아무런 문제가 없다'는 한국원자력안전위원회의 결정에도 불구하고 현재까지 재가동 여부를 놓고 논란이 끊이지 않고 있다. 시민의 한 사람으로 답답하기 그지없다.

한수원 잇단 실책·비리로 신뢰 바닥

이 지경까지 오게 된 것은 1차로 한국수력원자력(이하 한수원)의 책임이 가장 크다고 생각한다. 한수원은 그동안 원전 이용률이나 고장정지율 등 운영실적 관리에 치중해왔으며 정부도 원전의 안전관리에 신경을 쓰지 못한 채 지난 2008년 말 아랍에미리트연합(UAE)에 첫 원전 수출을 달성한 것이 어려운 국내 경제의 해법인 양 의기양양했던 것 같다.

사실 지난해 초 벌어진 일본 후쿠시마 원전 사고는 세계적으로 원전산업의 부흥에 찬물을 끼얹는 결과를 초래했다. 큰 기대를 걸었던 '원자력 르네상스 시대'를 누려보지도 못하고 원전산업 쇠퇴기에 접어드는 것 아닌가 하는 우려가 커졌다. 이런 상황에서 고리 원전에서 발생한 일련의 사건으로 국민은 원자력산업에 대해 따가운 시선을 보낼 수밖에 없다. 그동안 쌓아온 원전에 대한 신뢰가 한순간 바닥으로 떨어졌다.

그러나 원전을 북한의 핵실험처럼 매우 위험한 것으로 인식하는 등 왜곡된 지식에 현혹돼 현실과 너무 다른 내용이 기정사실화되고 있는 것은 큰 문제다. 일본 원전 사고에 대한 학습효과로 국내 원전산업에 대한 인식이 지나치게 왜곡돼 있는 것 같다. 포퓰리즘이 만연한 이런 시기에 이런 글을 쓴다는 게 왠지 거북하지만 무조건적인 원전 반대는 곤란하다.



한수원은 최근 사태와 관련, 원전 운영 종합개선대책을 수립하고 경영 쇄신 방안을 마련하는 등 다양한 자구노력을 펴고 있다. 또 각계 외부 전문가들로 구성된 태스크포스팀으로부터 안전문화에 대한 평가를 받고 국제원자력기구(IAEA)로부터 고리 1호기 안전점검도 받았다. 그렇지만 원전산업 및 한수원의 신뢰가 심각하게 훼손된 상태에서 이 같은 노력은 별로 신통한 효력을 발휘하지 못하는 것 같다. 국민은 고리 1호기 사고 은폐 사건 및 납품 비리 사건을 접하면서 믿는 도끼에 발등 찍힌 심정이었을 것이다.

그럼에도 우리는 이번 사건 때문에 국가 중대사를 그르쳐선 안 된다. 위기 뒤에는 항상 기회가 오기 마련이다. 필자는 이런 위기 국면을 통해 국내 원자력산업계와 한수원이 환골탈태할 수만 있다면 이번 일련의 사건이 빨리 터진 게 오히려 다행이라고 생각한다.

환골탈태해 국민과 국가에 속죄를

고리 원전 1호기에 한 번의 기회를 더 줘 보자. 죄는 밉지만 국가의 미래를 생각해 마지막 기회를 줘보자. 신뢰가 높은 조직은 그렇지 않은 조직에서 볼 수 있는 엄격한 통제가 사라져 통제능력에 약점을 가질 수 있다고 한다. 결코 잘해서 기회를 주자는 것이 아니라 반성하라는 뜻으로 한 번 더 기회를 주자는 것이다. 그야말로 '벌(罰)'인 셈이다.

국내 원자력산업계와 한수원 임직원들은 잃어버린 신뢰를 되찾기 위해 스스로 혁신하려는 자구노력을 지속적으로 펼쳐야 하며 이런 혁신 과제를 구호로 끝내지 말아야 한다. 원자력산업계와 한수원의 모든 자구노력이 '관행'처럼 형식적으로 진행되지 않기를 간절히 기대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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