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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나영 기자의 1일1식(識)] <87> 문화통합 지름길은 '천천히 알아가기'


얼마 전 어느 인수합병 전문가를 만났습니다. 젊은 나이에 보험사 CEO를 했었고, 회사가 IMF 이후 위기에 빠져 부도가 난 이후부터는 구조조정 컨설팅 및 턴어라운드(회생) 전문가로 활동한 사람입니다. 서로 다른 기업을 합치고 나서 이들이 성공적으로 새 출발을 하기 위해 필요한 조건이 무엇이냐고 기자는 물었습니다. 수익성, 핵심 기술의 확보로 인한 성장성 등의 이야기를 할 줄 알았습니다. 그런데 놀랍게도 이 전문가의 말이 인상적이었습니다. ‘핵심은 문화입니다.’

사실 사회과학자들 사이에서 ‘문화’ 이야기는 아무것도 하지 않겠다는 말과 동일시된다고 비난받기 일쑤입니다. 예를 들어 서로 제휴를 맺고 있는 화학 기업과 전자 기업이 있습니다. 처음에는 서로 비슷한 모그룹 안에서 성장한 조직이기 때문에 편하게 함께 일할 수 있는 상대처럼 인식되었습니다. 그러나 시간이 지날수록 차이가 보였습니다. 과업을 처리하는 속도, 특정 사안에 대해 주목하고 분석하는 방식 등 하나같이 다른 것들만 드러났습니다. ‘이럴 줄 알았으면 친정 효과를 배제하고 과감하게 다른 업체를 선정할 걸 그랬나’ 고민하던 찰나, 계약 초기부터 사업을 주도하던 어느 임원이 넌지시 말합니다. ‘문화가 달라서 그래!’ 문화란 그런 것입니다.

인류학자들은 문화란 사람들의 가치체계와 규범, 행동 양식 등을 정하고, 사람들의 인지적 판단에 영향을 미치는 그 무엇이라고 정의했습니다. 일찍이 유명한 사회학자이가 경영학자인 호프스테드는 동양 문화와 서양 문화의 차이를 설명하며 ‘문화적 거리 모형(Cultural distance model)’을 제안하기도 했습니다. 전체주의적인 문화와 개인주의적인 문화, 남성적인 문화와 여성적인 문화, 효율성 위주의 문화와 공정성 위주의 문화 등 ‘거리’ 를 기준으로 다양한 이분법들이 나타납니다. 어쩌면 이런 차이는 영원히 극복할 수 없는 장벽인지도 모르겠습니다. 마치 태어나면서부터 모든 사람에게 주어진 사고와 행동의 차이 때문에 빚어지는 것처럼 느껴지니까요.



그런데 요즘 들어 인수합병 전문가들이 조심스레 업체들에게 제안하는 전략 중 하나가 ‘천천히 알아보기’라고 합니다. 아무것도 모르는 대상에게 매력을 느낄 게 아니라, 처음에는 거래를 시작했다가, 그 다음에는 서로 함께 일하는 제휴나 조인트벤처 방식의 사업을 한 후 상대방이 어려워질 것 같으면 적절한 값에 인수하는 전략입니다. 젊은 남녀들이 잠깐의 사이에 연애를 결정했다 후회하듯 겉으로 보이는 수익성과 성장성 지표만을 믿다가 큰코다치는 경영자들이 많습니다. 특히 중국 기업이나 인도 기업처럼 회계 정보 처리가 발달하지 않은 개도국 기업들의 경우에는 보여주는 것이 오히려 보여주지 않는 진짜 모습을 왜곡하는 경우가 종종 있죠. 그러나 천천히 서로를 알아가다 보면 인식의 차이, 행동의 차이와 같은 문화적 장벽을 허물 기회가 생겨납니다. 사람은 익숙한 대상에게 덜 위협을 느끼는 존재입니다. 마찬가지로 기업도 점진적으로 접근하는 관계에 더 안심할 수 밖에 없습니다. 가끔 당장 가까이하기에는 너무 까칠한 상대방도 있습니다. 그를 안심시키기 위해, 천천히 알아가는 것은 어떨까요.

/iluvny23@sed.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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