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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경제소사/11월30일] 프리드리히 리스트


알렉산더 해밀턴과 아돌프 히틀러. 미국의 초대 재무장관과 2차 대전을 일으킨 두 사람 사이에는 이니셜(AH) 말고도 160년 시간의 간극을 연결해주는 고리가 있다. 프리드리히 리스트(Friedrich List). 게르만 민족의 경제를 걱정한 우국지사이자 독일 역사학파 경제학의 창시자다. 피혁업자의 아들로 1789년 태어난 그의 출발점은 공무원. 17세에 서기직으로 시작해 승승장구, 뷔르템베르크 왕국의 내각 수반까지 올랐다. 나폴레옹 군대가 전파한 자유주의 사상에 매료돼 입헌군주제 도입을 시도했지만 보수귀족들에게 밀려 모든 자리에서 쫓겨났다. 독일 내 연방국가들 간 관세동맹을 주창하고 의회에도 진출했으나 1822년 ‘체제를 무너뜨릴 급진주의자’로 체포돼 강제노동형을 치르고 추방 당했다. 1825년 미국에 도착한 그는 독일어 신문을 창간, 잭슨 대통령의 선거운동을 돕고 석탄과 철도사업에 투자해 돈도 벌었다. 조국을 잊지 못한 그는 잭슨 대통령에게 부탁해 함부르크 주재 미국영사 자격으로 독일로 돌아왔다. 망명 5년 만에 귀국한 그는 미국에서 익힌 해밀턴의 ‘유치산업보호론’을 독일에 접목시켜 보호주의 무역을 제창했다. 자유무역으로는 영국에 예속될 뿐이라며 제조업을 보호 육성해야 한다고 외쳤다. ‘습관은 제2의 천성’이라며 민족의 각성을 촉구하던 그는 ‘급진주의자’라는 허울의 벽을 넘지 못하고 1846년 11월30일 자살했지만 ‘국민경제’와 부국강병이 중요하다는 주장은 이후 독일 경제정책의 근간으로 자리잡았다. 히틀러는 집권하자마자 ‘리스트 부활운동’까지 벌였다. 한국을 포함해 후발 산업국가들의 발전전략도 하나같이 그의 ‘따라잡기 전략(catch up)’과 맥락을 같이 한다. 최근 리스트의 이론은 재조명되고 있다. 세계화에 대항하는 논리로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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