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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CB 양적완화 불붙은 환율전쟁] 양적완화 회의론 확산… "구조개혁 없인 미봉책 불과"

일부국가 도덕적 해이 유발

소비·투자회복 연결도 안돼

"은행대출 등 늘려야" 지적도

글로벌 금융시장이 유럽중앙은행(ECB)의 예상을 뛰어넘는 양적완화조치에 일제히 환호하고 있는 가운데 전문가들은 "주가·채권 등 자산가격은 오르겠지만 유로존 실물경제에 큰 도움이 되지 않는다"며 회의론을 내놓기 시작했다. '바주카포'로 위장했지만 실제로는 자산매입효과가 크지 않고 너무 뒤늦게 양적완화조치를 내놓았다는 것이다. 무엇보다 은행 시스템, 노동시장 등 구조개혁을 동반하지 않을 경우 '시간 벌기'에 불과할 뿐 오히려 모럴해저드로 위기를 심화시킬 것이라는 우려가 나온다.

러스 코에스테리치 블랙록 수석투자전략가는 22일(현지시간) 뉴욕 맨해튼의 블랙록 본사에서 외신기자들과 간담회를 갖고 "ECB의 양적완화로 디플레이션 리스크가 줄고 유로화가 약세를 보이면서 경기에 도움이 될 것"이라며 "ECB가 아무것도 하지 않는다면 투자가들이 유럽 자산이나 (남유럽 등) 주변부 국가의 국채를 내던졌을 것"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그는 "이번 조치는 유로존의 만성적인 저성장이나 구조적인 비효율성에 대한 해답이 아니라 경제안정에 기여하는 데 불과하다"며 "유로존 경기가 급속한 회복세를 보이기 힘들 것"이라고 전망했다. 코에스테리치 전략가는 이어 "미국 연방준비제도(Fed·연준)가 양적완화를 시작할 때보다 현재의 유로존 금리가 낮다는 점도 양적완화의 효과를 반감시킬 것"이라고 강조했다.

유로존이 돈을 풀어도 은행권에만 맴돈 채 소비·투자회복 등으로 이어지는 않는 '유동성 함정'에 빠져 있어 양적완화가 실물경제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지적도 제기됐다. 손성원 캘리포니아주립대 석좌교수는 "유럽 은행들이 가계·기업에 대출하는 대신 ECB에 다시 3조달러를 초단기로 예치해놓고 있다"며 "핵심은 유동성 공급이 아니라 은행의 대출 확대가 돼야 한다"고 지적했다.

그는 이어 "그리스·이탈리아·프랑스 등 몇몇 국가들은 재정 긴축이나 구조개혁이 필요한데도 양적완화를 통해 단지 국채 상환 만기일을 연장하며 도덕적 해이를 유발하고 있다"며 "독일·네덜란드 등 주요국이 양적완화에 지속적으로 저항할 수 있어 자산매입 프로그램이 효율적으로 운영될지도 의문"이라고 경고했다.



이날 서울경제신문이 입수한 월가 투자은행들의 투자가 보고서도 비슷한 반응 일색이었다. 대체적으로 자산매입이 유지되는 내년 9월까지 유로존 경제에 긍정적인 효과를 기대하면서도 프랑스 등 주요국들이 자국 내 반발 때문에 구조개혁을 미룰 가능성도 커졌다는 것이다. 또 ECB의 양적완화 규모가 실제로는 크지 않다는 지적도 나왔다. 매달 600억달러 매입 규모는 유로존 국내총생산(GDP)의 7% 수준으로 영국의 20%, 미국의 25%에 비해 크게 떨어진다.

특히 이번 ECB의 조치가 재정동맹이 빠진 통화동맹의 근본적인 한계를 드러냈다는 분석도 제기된다. 실제 중앙은행이 모든 리스크를 떠안는 미국·일본 등과는 달리 ECB의 양적완화조치는 회원국이 채권매입 손실 위험의 20%만 공동부담하고 나머지 80%는 각국 중앙은행이 떠안는 형태로 설계돼 있다.

바클레이스는 "독일 등 북유럽 국가들의 동의를 이끌어내기 위한 어쩔 수 없는 조치"라면서도 "미국과 같은 효과는 기대하기 힘들고 (과거 재정위기를 겪었던) 주변부 국가의 경우 양적완화의 약발은 더 떨어질 것"이라고 전했다. 당장 오는 25일 총선을 앞두고 '발등에 불'이 떨어지는 그리스 사태를 진화할 수 있을지도 의문이다. 엘가 바르치 모건스탠리 유럽부문 수석이코노미스트는 "그리스가 채무 재조정을 고집할 경우 ECB가 더 이상 그리스 국채를 사지 않으려 할 것"이라고 말했다. 마리오 드라기 ECB 총재 역시 7월 이후에나 그리스 국채를 매입할 수 있다고 밝힌 상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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