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원전 7세기. 중원 서쪽 변방의 진(秦)나라가 동진을 위해 칼날을 곤두세우던 중국 전국시대. 위(魏)나라를 밀어내고 중원의 패주를 차지한 제(齊)나라는 중원으로 세력을 넓혀갈 준비를 하면서 광활한 중원은 전쟁의 소용돌이에 휩싸이게 된다. 진나라 왕의 책사가 돼 권세를 얻으려 했으나 퇴짜를 맞은 소진(蘇秦)은 조(趙)나라로 가서 왕을 설득했다. 제와 진 두 강국 사이에 끼어있던 한(韓)·조(趙)·위(魏) 3국이 살아 남는 길은 동맹을 결성해야 한다고 강조한 소진의 제의에 3국의 왕들은 솔깃했다. 약소국끼리 연합해 강대국에 대항한다는 ‘합종(合縱)’은 이렇게 시작됐다. 중국 춘추전국시대, 제후들에게 지략을 제공하기 위해 등장했던 제자백가(諸子百家). 그 중에서도 중국의 지략형 문화에 지대한 영향을 퍼뜨린 종횡가(從衡家)는 춘추전국시대에 명성을 떨쳤던 학설 중 하나다. 렁청진 중국 인민대학 중문과 교수가 중국의 실용적이고 정치적인 사상의 근원이었던 종횡가의 이론과 의미 그리고 오늘날 적용 가능성을 구체적으로 풀어냈다. 종횡가의 특징은 고정된 군주가 없다는 점과 고정된 정치적 주장이 없으며, 일정한 가치 기준이 없고 세력과 이익 추구 외에 도덕적 속박이 전혀 없다. 무원칙적 공리(公利)의식과 유창한 언변으로 전국시대를 좌우했던 이들의 지모(智謀)는 중국인의 민족성에 지대한 영향을 미쳤다고 저자는 분석하고 있다. 춘추전국시대는 10개가 넘는 나라가 우후죽순격으로 등장해 온갖 지략과 계책이 난무하는 혼돈의 시기였다. 이때 등장했던 종횡가는 누가 얼마나 많은 피를 흘리든 문제삼지 않고 오로지 중요한 것은 자신들의 권력과 부귀영화 뿐이었다. 이렇게 꽃을 피웠던 종횡가는 진나라의 통일로 점차 설 땅을 잃게 되면서 세력이 약화됐다. 책은 합종을 주장했던 소진과 동서로 연횡(連衡)해 각자의 영토를 지킬 것을 주장했던 장의(張儀) 등 종횡가의 대표적인 지략가들을 통해 종횡가의 흥망성쇠를 소개한다. 이들의 인재발탁과 탁월한 언변, 그리고 전략 등을 풀어낸다. 그런데 왜 하필 뻔뻔하고 염치없는 종횡가의 지모에 저자가 관심을 두는 것일까. 저자는 종횡가의 전략이 격변하는 외교정세에 필요한 외교력의 기본이라고 설명한다. 절대 군주를 섬기지 않고 곧은 정치적 주장을 품지 않으며 인간의 탐욕까지 활용하며 오직 실리를 추구했던 이들이야 말로 오늘날 국가간 외교의 현실에 필요한 전략수립에 알아야 할 학설이라는 것. 이해관계야 말로 복잡한 국제관계를 푸는 핵심적인 열쇠이기 때문이다. 저자는 이들의 옳고 그름을 판단하지 않는다. 대신 어떻게 이들이 등장했으며 무슨 활동을 벌였는지에 대한 현상에 집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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