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0년 4월10일, 미국 카네기 멜론 대학. 공화당 대선 후보로 나선 조지 부시가 레이건 후보의 감세 공약에 대해 공격을 퍼부었다. ‘감세를 통한 성장이란 사람을 현혹시키는 연기만 피워 올릴 뿐 알맹이는 전혀 없는 주술 경제학(Voodoo Economics)에 다름 아니다.’ 대선 경쟁에서 패하고 레이건의 러닝 메이트로 지명된 뒤부터 부시는 입을 닫았다. 부통령으로 재임하던 1982년에는 ‘주술의 경제학’에 대한 질문을 받고는 ‘영국 출신인 한 참모의 구상이었을 뿐 나는 입 밖에 낸 적이 없다. 증거도 없지 않는가. 내기를 걸어도 좋다’며 발언 자체를 부인했다. 하루 뒤 NBC TV에서 당시 필름을 찾아내 방영하자 부통령실은 이런 변명을 내놨다. ‘그저 농담했을 뿐이다.’ ‘주술’로도 비유되던 레이거노믹스는 부자들의 환영을 받았다. 레이건의 임기 초 미국 순재산의 8%를 갖고 있던 최상위 1% 부자의 재산이 임기 말에는 12%로 늘었다. 감세 덕이다. 반면 복지예산 삭감으로 중산층이 빈곤층으로, 빈곤층이 최빈곤계층으로 주저앉았다. 국가채무는 9,090억달러에서 2조8,678억달러로 불어났다. 쌍둥이 적자도 구조적으로 자리잡았다. 아이러니컬한 점은 아버지 부시가 맹공했던 레이건의 경제정책을 아들 부시는 맹신했다는 점이다. 그 결과가 참담하다. 2008년 말 상위 1%가 차지하는 비중은 33%를 넘어섰다. 국가채무는 올해 말 11조달러를 넘어설 전망이다. 아버지 부시의 작명 센스를 감탄하기에는 걱정이 앞선다. 오늘날 세계경제 위기의 주요인으로 꼽히는 ‘주술의 경제학’의 핵심인 감세를 여전히 신봉하는 사람들이 있기 때문이다. 김수행 전 서울대 교수가 이렇게 말한 적이 있다. ‘위기를 극복하려면 대통령부터 무당의 경제학을 버려라.’
< 저작권자 ⓒ 서울경제,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