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들이 화를 내는 이유가 무엇일까요? 정신과 의사들은 자신이 상황을 통제하지 못할 때 느끼는 감정이 ‘분노’라고 말합니다. 아무리 노력해도 상황을 바꿀 수 없다는 사실은 무력감을 느끼게 합니다. 어떤 사람들은 화를 참으며 ‘괜찮다’고 자기 최면을 걸지만, 누군가는 ‘괜찮다’는 말 한 마디로 쉽게 감정을 추스르지 못합니다. 환경에, 상대방에게 나를 맞추기 위해 화를 참을수록 정서적 억압의 정도는 더욱 심해지고, 자괴감까지 들기도 합니다. 결국 왜곡된 방향으로 분노가 터지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렇게 되면 당사자뿐만 아니라 주변 사람들까지 피해를 입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압력솥에서 증기를 빼듯이, 화가 날 때 적당히 감정을 표현하면서 자신의 마음을 추스르는 습관을 가질 필요가 있습니다. 직장 상사들 중 상당수는 자신이 부하에게 느꼈던 복잡한 감정을 예측할 수 없는 순간에 토로하곤 합니다. 평소 마음에 들지 않던 아랫사람의 습관, 말투, 업무 방식 같은 것들을 가슴에 담아두었다가 특정 상황에 약점을 잡아 욕하는 것입니다. 그 경우에 흔히 하는 말이 이렇습니다. “너는 왜 내가 시킨 일을 할 때마다 이런 식이지?” “혹시 투잡 뛰니? 왜 이렇게 일에 집중을 못하니.” 자신의 후임이 내용이 빈약한 자료를 들고 왔을 때, 그간 묵혀두었던 생각들을 속사포처럼 쏟아내는 것입니다. 그렇다고 자신의 분노를 ‘적기’에 표현한 상사의 마음이 제대로 치유되었을까요? 아닙니다. 감정적으로 공격받은 부하의 이지러진 얼굴을 보며 또 다른 분노가 쌓일 뿐만 아니라, 그간 자신이 억눌러 왔던 것들에 대한 서러움마저 생기면서 자기 정당화를 하기 시작합니다. 처음이 어렵지 그 다음은 쉽습니다. 그래서 더욱 세게, 그리고 뜬금없이 부하에게 화를 내는 습관이 자리 잡습니다. 화에도 경로 의존성(Path dependence)이 있습니다. ‘쓸데없이 분칠하고 다니는 것들’이라며 여성을 비난했던 어느 대기업 회장의 폭언도 이런저런 감정이 응축되어 있을 겁니다.
커뮤니케이션 전문가들은 적당히 억눌러진 화를 푸는 것도 중요하지만, 분노의 감정을 적기에 표출하는 과정이 더욱 긴요하다고 말합니다. 분노는 적절히 관리해야 하는 자원(resource)이라는 관점을 가져야 한다는 것입니다. 카리스마적인 리더는 화를 냄과 동시에 대안을 제시합니다. 자신의 감정을 드러내기는 하지만 적절한 방향성을 갖추고 있습니다. 반면 범인(凡人)에 불과한 리더는 단순히 감정만 토로합니다. 그 이후에 부하가 어떤 방식으로 자신에게 맞추어야 한다는 가이드를 주지 않고 ‘뺑뺑이’를 돌립니다. 재미있게도 ‘위기 경영’이 강조될수록 이런 사람들이 많답니다. 하기야 새벽 6시에 출근하고, 아침에 커피도 마시지 말라고 하고, 점심시간은 50분을 넘기지 않는 게 혁신이고 조직 관리라고 믿는 사주들이 있으니 쓸데없이 화내는 것이야말로 ‘영’을 세우는 길이라고 믿는 것도 이상하지 않습니다.
이제 직장인들에게 제대로 화내는 법을 가르쳐야 할 때가 아닌가 싶습니다. 강사는 마인드가 훌륭한 최고경영자가 맡았으면 좋겠습니다. 플라톤은 가장 이상적인 정치가 현명한 철인 독재자에게서 나올 수 있다고 믿었답니다. 똑똑한 오너가, CEO가 인간적으로 화를 관리하는 방법을 아랫사람들에게 전파하기 시작한다면 어느 누가 바뀌지 않겠습니까. ‘괜찮지 않음’을 ‘괜찮게’ 표현할 줄 아는 자세를 가르쳐야 할 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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