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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회복이요? 다른 곳에 가서 물어봐요." 영하13도로 올 겨울 들어 서울이 가장 추운 날씨를 보였던 7일 오전5시10분. 양천구 신정동 신정사거리 인근 인력시장에서 만난 한 건설 일용직 근로자는 '최근 경기가 회복된 것 아니냐'는 질문에 대뜸 화부터 냈다. 그는 "35년 넘게 공사 현장을 누비며 철근 작업을 해왔지만 지금 같은 경우는 별로 없었다"며 "겨울이라는 계절적 요인을 감안해도 건설 경기가 너무 가라앉았다"며 볼멘소리를 했다. 그는 "경기가 좋았을 때는 한 달 평균 18~20일 정도 일했는데 요즘에는 많이 나가봐야 고작 6일이 전부"라고 전했다. 최근 각종 경제 지표가 회복 흐름을 보이면서 경제회복에 대한 기대감이 높아지고 있지만 실물경기를 가늠해볼 수 있는 새벽 인력시장은 오히려 더욱 얼어붙고 있다. 인력 시장 수요의 대다수를 차지하는 건설산업이 침체의 늪에 빠진데다 최근의 폭설과 매서운 한파로 그나마 있던 인력 수요마저 뚝 끊겨버렸다. 신정사거리 인력시장은 지난 1970년대 신정동 일대에 소규모 단독 주거시설인 신정단지가 조성되면서 철근ㆍ콘크리트ㆍ목공 등 전문 건설인력이 집결하는 곳이 됐다. 현장업자와 사전 선약된 일용직 근로자들이 주로 만남의 장소로 활용하거나 일부는 막연히 일거리를 구하기 위해 나오기도 한다. 예전에는 새벽이면 150~200명 정도가 모여 이곳에서 일자리를 찾아갔지만 이날 대기실 천막에 모인 인원은 20명을 채 되지 않았다. 2주째 일감을 찾지 못했다는 박모(57ㆍ남)씨는 이날도 빈손으로 돌아서야 했다. 그는 한 손에 소주 병을 든 채 "날씨가 춥고 눈이 많이 내려도 시간이 흐르면 해결되니 괜찮지만 일감이 없는 것은 시간이 흘러도 마찬가지 아니냐"며 한숨을 쉬며 고개를 떨궜다. 꽁꽁 얼어붙은 인력시장의 수요는 신정사거리 주변 인력사무소에서도 쉽게 확인할 수 있었다. 전문건설인력이 아닌 이른바 잡부(건물 자재 나르기, 청소 인력 등을 뜻함)를 현장과 연결해주는 P인력사무소의 한 관계자는 "일감이 없다 보니 사무실에 왔다 그냥 돌아가는 사람이 대다수"라고 말했다. 오전6시10분을 넘어서자 신정네거리 버스정류소 주변에는 일감을 구하지 못한 채 집으로 발길을 돌리는 일용직 근로자가 눈에 많이 띄었다. 근처 편의점에서 소주와 어묵으로 아쉬움을 달래는 이들도 있었다. 정류장에서 만난 한 근로자는 "건설 현장에서 상대적으로 인건비가 싼 중국 동포 근로자를 선호하다 보니 내국인 건설 근로자의 입지가 줄어들 수밖에 없다"고 전했다. 정부도 이 같은 점을 인지하고 지난해 5월부터 건설업종에 외국인 취업 등록제를 도입해 총량을 규제하고 있지만 현장에서는 잘 지켜지지 않는다고 이곳 일용직 근로자들은 인식하고 있었다. 또 정부는 불경기로 일감을 찾지 못하는 비정규직 건설 근로자를 위해 6월부터 교육훈련에 참가하면 1인당 1만5,000원씩 일비를 지급하는 취업능력향상 프로그램을 운영해왔지만 새해 들어 이마저도 종료됐다. 올해 신규 사업으로 38억원의 예산이 잡혀 있기는 하지만 기획재정부와 부처의 협의가 남아 있어 집행이 되지 않고 있다. 추운 날씨와 오랜 경기침체, 그리고 제때 집행되지 않는 정부 정책이 뒤섞여 인력시장은 기록적인 강추위보다 더 추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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