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스의 수도 아테네에서 자동차로 30분 정도 되는 곳에 위치한 항구도시 피라에우스 외곽의 드라페조나구(區)는 중소 제조업체의 집결지라는 설명이 무색할 정도로 적막감과 황량함이 감돌았다. 그리스가 글로벌 경제위기의 진앙지라는 사실을 입증이라도 하듯 얼핏 보기에도 기계가 돌아가는 공장보다 굳게 철문을 걸어 잠근 공장이 많아 보인다. 현지 선박기계 제조업체인 발텔디젤사의 즈다브라 발텔(48) 사장은 최근 직원들의 월급을 30%씩 깎았는데도 늘어나는 세금부담과 빚 때문에 더 이상 공장을 가동하기 어려울 정도라고 하소연했다. 기업이 문을 닫으면 일자리는 더 줄고 가계부실은 다시 기업도산과 은행부실ㆍ재정악화로 이어진다.
수년째 그리스를 둘러싼 악순환은 올해 이 나라 경제성장률을 -7%로 끌어내리는 데 그치지 않고 인근 유럽 국가들도 침체의 골로 몰아넣고 있다. 미국과 중국 등도 예외는 아니다. 지난 2008년 금융위기의 여파가 채 가시기도 전에 세계를 뒤덮은 그리스발(發) 경제위기는 4년 만에 다시금 전세계를 'R(Recessionㆍ침체)의 공포'로 몰아넣고 있다.
일본 아오야마가쿠인대의 사카키바라 에이스케 교수는 "올해부터 내년에 걸쳐 전세계가 전후 최악의 동시불황에 빠져들 가능성이 높다"며 "국제기구들의 예측과 달리 내년은 올해보다 상황이 더 악화될 것"이라고 경고했다. 유럽의 유일한 성장동력인 독일이 올 하반기 경기후퇴 대열에 동참할 가능성이 높아진 가운데 스페인의 전면 구제금융이 임박했다는 전망에 무게가 실리면서 경기침체와 재정위기에 가속도가 붙고 있다. 중국과 인도ㆍ브라질 등 브릭스(BRICs) 국가들의 경기도 급속도로 얼어붙으면서 고성장 신화에 제동이 걸린 상태다. 여기에 그나마 호조를 보이던 미국경제마저 1%대의 저성장에 빠지며 침체의 조짐을 나타내기 시작했다.
빠르게 형성되는 글로벌 동시불황의 기류는 수출의존도가 높은 한국경제에도 짙은 비구름을 몰고 오고 있다. 사카키바라 교수는 "동시불황이 점진적으로 진행될지, 충격이 큰 경착륙 형태를 띠에 될지는 향후 유럽 상황에 따라 달라질 것"이라면서 "대외의존도가 높은 한국은 물론 세계의 어느 곳도 그 파장에서 벗어나기 어려울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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