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부인력을 불러 자사의 일을 맡기는 간접고용은 오늘날 더이상 특별한 현상이 아니다. 서비스업뿐만 아니라 자동차, 조선 등 제조업에서도 광범위하게 사용되고 있다. 모든 직원을 직접 고용하면 탄력적, 효율적으로 인력을 활용하기 어려우므로 많은 기업들이 이 같은 간접고용을 활용하고 있다.
하지만 정작 간접고용된 근로자들은 불만이 많다. 대기업 정규직과 같은 사업장에서 비슷한 일을 하는데도 임금도 적고 고용도 불안하다는 이유다. 때문에 간접고용을 늘리려는 기업과 간접고용의 직접고용·정규직화를 주장하는 노동자들 사이에 갈등이 끊이지 않았다. 이런 갈등의 불씨를 대형 이슈로 부각시킨 것이 2010년 현대자동차의 불법파견에 대한 대법원 판결이다.
판결을 설명하기 이전에 간접고용의 형태와 규정을 이해할 필요가 있다. 원청업체 명찰을 달고 일하면서도 외부업체 소속이라면 그 직원은 파견이거나 사내하도급 근로자다. 파견은 외부 소속이면서 원청업체의 업무 지시·지휘를 받아 일하는 경우를 말하는데 파견근로법에 따라 상당한 제약을 받는다.
경비와 운전 등 32개 업종에만 허용돼 대다수의 제조업과 서비스업에서는 사실상 파견근로자를 사용할 수 없다. 또 2년 넘게 파견 근무를 하면 기업은 해당 근로자를 직접 고용해야 하는 의무가 생긴다.
이러한 이유로 제조업을 중심으로 많은 기업들이 파견 대신 사내하도급을 사용하고 있다. 사내하도급은 원청에서 일하면서도 소속 하청업체의 지시를 받는다. 2010년 고용노동부 조사에 따르면 300인 이상 제조업체의 41%가 사내하도급을 이용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여기서 애매한 부분이 있다. 사내하도급은 하청업체의 업무 지시를 받아야 하지만 원청업체 사업장에서 일하다 보면 원청의 지시를 받는 경우가 있다. 가령 자동차공장의 컨베이어벨트에서 일하는 사내하도급의 경우 정규직 근로자와 어우러져 하나의 생산공정 안에서 일하기 때문에 애매함이 두드러진다. 자동차업종은 파견 근로자를 사용할 수 없기 때문에 사내하도급을 파견처럼 사용하고 있다면 이는 '위장도급', '불법파견'에 해당된다.
2000년대 들어 사내하도급 근로자들은 이 취약한 고리를 공략해 '나는 불법파견'이며 나아가 '원청이 나를 직접 고용해야 한다'는 소송을 제기했고 치열한 법적 공방이 이어졌다.
결국 2010년 현대차의 불법파견을 인정하는 대법원 판결이 나왔다. 완성차업체를 대상으로 한 첫 사례였다. 소송을 제기한 최병승씨는 2002년 3월13일 현대차의 한 사내하청 업체에 입사해 울산공장에서 일하면서 자신이 '사실상 파견근로자, 혹은 현대차에 직접 고용된 것과 다름없다'는 문제의식을 느끼고 현대차에 정규직 전환을 요구하다가 2005년 2월2일 해고됐다. 최씨는 즉시 현대차를 대상으로 부당해고와 부당노동행위 구제 소송을 제기했다.
결과는 최씨의 승리였다. 2010년 7월22일 대법원은 ▦현대차가 사내하도급 근로자에 대한 작업배치와 변경결정권을 갖고 있고 ▦사내하도급 근로자는 현대차의 각종 작업지시서에 의해 업무를 수행한다는 점 등을 들어 "최씨는 현대차의 노무 지시를 받는 파견근로자"라고 판결했다.
특히 대법원은 "최씨가 파견근로자로 2년 넘게 일했으니 현대차는 최씨를 직접 고용해야 한다"고 판단했다. 하급심에서는 파견근로자를 사용할 수 없는 자동차업종에서 이뤄진 불법파견이므로 2년 뒤 직접고용의무(해고 당시 직접고용 간주)가 적용되지 않는다고 봤으나 대법원은 "불법파견이라도 직접고용의무를 적용해야 한다"고 못박았다.
노동계는 대법원 판결에 쾌재를 불렀다. 우리나라에서 세 손가락 안에 꼽히는 대기업이며 사내하도급 근로자만 1만명이 넘는 현대차에서 불법파견 결정이 났으니 '간접고용의 직접고용'에 상당한 힘이 실릴 터였다.
실제로 최씨와 유사한 불법파견 소송이 잇따랐고 여기서 노동자의 손을 들어준 판결이 차곡차곡 쌓여갔다. 2010년 11월 현대차 울산·아산·전주공장의 사내하도급 노동자 1,600여명이 '불법파견임을 확인해달라'며 근로자지위 확인소송을 냈다. 같은 달 서울고등법원은 현대차 아산공장의 사내하도급 직원 6명이 낸 근로자지위 확인소송에서 불법파견을 인정하는 판결을 내렸다.
지난해 2월엔 한국GM의 닉 라일리 전 사장이 불법파견을 저지른 혐의가 인정된다며 700만원의 벌금형을 내린 대법원 판결도 나왔다.
재계는 이 같은 소송과 판결에 억울함을 표시했다. 경기변동이 심한 자동차, 조선 업종 등에서는 간접고용을 활용한 탄력적인 인력 운용이 불가피하며 정규직 근로자의 고용경직성이 심한 상황에서 최소한의 노동유연성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결국 재계는 파견법 자체에 문제를 제기했다. 2010년 12월 현대차가 파견근로자를 2년 사용하면 직접 고용된 것으로 간주하는 옛 파견법의 고용의제 조항이 기업 경영의 자유를 침해한다며 헌법소원을 제기한 것이다.
헌법소원 이후 불법파견 관련 판결은 다소 정체됐다. 헌법소원이 제기되면 관련 소송이 계류된 하급심은 헌법재판소의 결정을 기다리는 경향이 있다. 하지만 장외에선 불법파견 이슈가 끊임없이 터졌다. 지난해 2월 고용노동부가 이마트의 사내하도급 근로자 2,000명을 불법파견으로 적발, 직접고용하라고 명령을 내렸다. 같은해 6월엔 삼성전자서비스에서도 불법파견 의혹이 제기됐으나 고용부가 "파견법 위반은 아니다"고 판단하면서 논란이 일단락됐다.
올해 상반기에는 현대차가 제기한 헌법소원의 결과도 나올 예정이다. 헌재 결정이 재계의 손을 들어주든 노동계에 유리한 입장을 고수하든 '간접고용이냐 직접고용이냐' 논란은 다시 한 번 뜨겁게 달아오를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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