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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스크 칼럼] 시장의 미신


지난해 말 태국에서 사업하는 지인을 만났다. 그는 불안한 태국 정정을 거론하며 주식에서 완전히 철수했다고 말했다. 그는 한국에서 주식으로 잃은 돈이나 태국에서 주식으로 없앤 돈이 비슷하다. 그에게 주식은 글로벌 관점에서 멀리해야 될 애물이다.

지난주 출장에서 돌아온 후배 기자가 전한 태국의 모습은 예상과 많이 달랐다. 군부가 쿠데타를 일으켜 계엄령을 선포했는데 방콕의 밤거리는 불야성이었다. 우리 같으면 집안에 틀어박힌 채 말도 조용조용했을 텐데 말이다.

지인은 정정이 불안해지면 경제가 흔들려 주가가 많이 내려갈 것으로 내다봤다. 지난해 마지막 개장일인 12월27일 태국 주가지수는 1,298.71포인트였다. 지난 23일 주가지수가 1,396.84포인트니까 약 100포인트 올랐다. 올 들어 태국 주가는 아름다운 우상향 곡선을 그리고 있다.

투자의 귀재로 알려진 켄 피셔와 라라 호프만스는 이런 것을 미신으로 규정했다. 그들이 쓴 '당신의 투자를 망치는 주식시장의 17가지 미신'이라는 책을 보면 15번째 미신이 '사회 혼란이 주가를 떨어트린다'이다. 책에 있는 표를 보니 1950년에 한국 전쟁, 매카시와 적색공포, 중국의 티베트 침공, 세계인구 25억명 돌파 등 악재가 잇따랐다. 그 옆에 있는 그해 전세계 주식수익률은 25.48%였다. 악재가 그렇게 많았는데 주가가 그렇게 많이 오른 것을 보면 사회 혼란이 오히려 호재가 아닌가 싶다.

사회 혼란이 주가를 떨어트릴 것이라는 미신은 '이번 혼란은 다르다'는 믿음에서 출발한다.

코스피 박스권 상단 주식 매도는 잘못

쿠데타 소식에 주식을 판 투자자들도 이번 쿠데타가 19번째라는 사실은 알고 있었을 것이다. 다만 이번 쿠데타는 과거와 달리 경제 근간을 훼손할 정도로 치명적일 것으로 우려했을 것이다.

2011년 일본 원전 사고는 어땠을까. 많은 일본 사람들은 당시 원전 사고가 일본 경제에 돌이킬 수 없을 만큼 심각한 타격을 입힐 것으로 예상했다. 이번 원전 사고는 유례가 없을 정도로 치명적이라고 생각했을 것이다. 그렇게 생각한 많은 사람은 갖고 있던 주식을 내다 팔았다. 이후 일본 경제는 아베노믹스를 맞았고 주가는 V자 급반등을 이어갔다.



요즘처럼 우리 주식시장이 재미없는 적이 있었을까. 언젠가부터 코스피는 1,900포인트 전후까지 떨어졌다가 2,000포인트 전후까지 오른다. 2,000포인트를 넘으면 이번에는 대세 상승을 시작할 것이라는 전망이 고개를 들었다가는 곧 숙이고 만다. 1,900포인트 밑으로 내려가면 다시 오를 것이라며 애써 자위하면서도 혹시 급락으로 이어지지 않을까 두려워한다.

주가가 박스의 아래와 위를 계속 확인하다 보니 어떤 투자자는 1,900선이 되면 주식이건 지수건 샀다가 2,000선이 되면 판다. 이른바 박스권 플레이다. 26일 코스피는 2,010.35포인트다. 이제 주식을 팔 때인가.

박스 상단을 뚫어줄 신호가 있다는 생각은 또 다른 미신이다. 2,000포인트에서 주식을 팔고 나간 투자자는 주가가 박스권을 뚫고 올라갈 어떤 신호를 기다릴 것이다. 시장에는 요즘 긍정적인 신호가 계속 나오고 있다. 이날 증권사들이 내놓은 증시 전망만 봐도 무지개 일색이다. '6월 중 코스피 2,100포인트 도달 가능(신한금융투자)' '2·4분기 중 박스권 상단 돌파 기대(KDB대우증권)' '코스피 추가 상승 예상(우리투자증권)' 등이 눈에 들어온다.

대세 상승 신호 기다리면 이미 늦어

2,000포인트대에서 주식을 판 투자자는 이 정도 신호로는 재투자를 고려하지 않을 것이다. 보다 근본적이고 확실한 신호가 나오기를 기다릴 것이다. 그 신호는 한국 경기가 본격적인 반등 국면에 접어들어 기업이 깜짝 놀랄 만한 실적을 내는 것일 수도 있고 중국이 그림자금융 문제를 완벽히 해결하고 체질을 개선해 새로운 경제도약을 시작한 것일 수도 있다. 그 신호가 나오기 전까지 코스피는 박스권에 갇혀 있을 것으로 여길 것이다.

그 신호를 기다리는 투자자라면 불행히도 아주 오랜 시간을 기다려야 할 것이다. 그 신호는 오지 않을 가능성이 더 크다. 어느 날 그 신호가 온다면 그때는 이미 주가가 훌쩍 올라 주식을 살 수 없을 것이다. 그 신호는 주식을 산 뒤 불현듯 확인해야 된다는 뜻이다.

/한기석 증권부장 hanks@sed.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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