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산기술연구원은 중소기업의 고질적인 ‘기술’ 문제를 최일선에서 풀어준다. 한해 동안 수행하는 기술연구 과제만도 800건을 넘는다. 특히 800건이 넘는 과제 중 실용화로 직결되는 건수는 600건 안팎이다. 실용화율 70%, 이는 웬만한 연구기관으로는 넘보기 힘든 실적이다. 생기원을 이끌고 있는 나경환(사진) 원장은 “기업이 필요로 하는 연구과제에 집중하기 때문”이라고 겸손해 했다. 하지만 이 같은 성과는 기업의 현실을 꿰뚫고 연구에 전력을 쏟는 ‘선택과 집중’의 결과다. 나 원장은 “생기원이 창립한 지 올해로 20주년이 됐는데 그간 수행한 과제만 8,000여건에 이르지만 앞으로 중소기업의 필요에 직결되는 더 많은 과제를 효과적으로 수행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중소기업의 기술경쟁력 강화가 곧 현재 부닥친 경제위기를 극복하는 근본적인 해결책이라는 게 그의 지적이다. -과제의 실용화 성공률이 70%로 매우 높던데요. 실용화된 과제 중 가장 눈에 띄는 것은 어떤 게 있는지요. ▦연구가 철저하게 기업과 시장이 필요로 하는 실용화 연구에 집중하기 때문일 겁니다. 이는 생기원의 설립 목표인 ‘중소기업의 기술 경쟁력 강화’와도 일맥상통합니다. 생기원은 실용화한 기술을 생산현장으로 이전, 중소기업의 질적인 성장을 하나씩 이루고 있습니다. 설립 20여년간 8,000여건의 과제를 수행해 70% 정도 실용화를 이뤘습니다. 연구개발(R&D)은 중소기업에 가장 시급한 3개 분야를 뽑아 집중하고 있습니다. 주력산업의 부품ㆍ소재를 공급하는 ‘생산기반 분야’, 저탄소 녹색성장의 근간이 되는 ‘청정생산시스템 분야’, 마지막으로 신성장동력 창출을 위한 ‘융ㆍ복합시스템 응용기술 분야’ 등입니다. -대표적인 실용화 사례를 꼽는다면요. ▦태양전지 분야인데요. 태양전지 제조원가의 70%를 차지할 만큼 핵심 부품이 되고 있는 ‘웨이퍼 잉곳’ 제조기술을 개발해 ‘아르케솔라’라는 회사에 10억원의 기술료를 받고 이전했습니다. 웨이퍼 잉곳을 대량 생산할 수 있는 공정기술 개발로 연 1,600억원의 수입대체 효과가 예상됩니다. 또 세계 최초로 나노질화 원천 표면처리기술인 ‘DLC(Diamond Like Carbon)’ 기술을 개발했습니다. 다이아몬드 코팅기술이라 불리는 이 기술을 제이엔엘테크에 이전해 현재 상업화를 추진 중입니다. -중소기업에 대한 기술지원에 대해 좀더 구체적으로 설명해주시지요. ▦잘 아시다시피 중소기업은 자금ㆍ인력ㆍ정보ㆍ기술력 등 모든 분야에서 역량이 부족합니다. 하지만 중소기업이 우리나라 고용 등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절대적입니다. 중소기업을 키워야 하는 이유지요. 중소기업이 모든 분야에서 열악하지만 생기원은 기술 분야의 지원을 담당하고 있습니다. 그렇다고 생기원이 30만개에 달하는 기술 주도형 중소기업 모두를 지원하기는 어렵지요. 때문에 생기원은 파급효과가 큰 기술 한건을 개발, 한번에 여러 기업을 지원하는 연구개발(R&D) 방식을 채택하고 있습니다. 플랫폼기술 개발 방식이 대표적인데요. 부품 설계기술인 ‘사이버 엔지니어 U24’의 경우 컴퓨터 시뮬레이션으로 최적의 설계방안을 도출하는 기술입니다. 이것만 있으면 동시에 100개 기업이 서로 영향 받지 않으면서 자율적으로 부품설계가 가능합니다. 현재 1,000개 이상의 기업으로 확대 적용하는 연구를 진행 중입니다. -중소기업 기술력 강화를 통해 부품ㆍ소재 등의 기술력도 키워야 할 텐데요. ▦그렇습니다. 부품ㆍ소재 분야의 경우 지난해 전체 무역수지는 흑자입니다. 그런데 유독 일본만 놓고 볼 때는 적자폭이 더 커졌어요. 부품ㆍ소재 분야에서 독보적인 기술을 갖고 있는 일본은 더 앞서가기 위한 엄청난 노력을 하고 있는데요. 일본은 지난 2006년 4월에 모노즈쿠리 기반기술고도화법 및 지원정책을 마련했습니다. 주조ㆍ프레스ㆍ도금 등 19개 분야의 고도기반기술을 갖는 중소기업군을 선택해 경쟁력을 더 키우겠다는 것인데요. 모노즈쿠리 기반의 연구개발 기획지원에만도 64억엔을 지원하고 있습니다. 우리 역시 지식경제부를 주축으로 해 2~3년 전부터 부품ㆍ소재 분야를 키우기 위한 노력을 경주하고 있으며 소재기술과 제조, 생산기반기술(도금ㆍ열처리ㆍ주물)이 함께 잘 클 수 있도록 지원하고 있습니다. -중소기업은 기술 등 다양한 정보도 어둡잖아요. 이를 해소하는 것도 급선무일 텐데요. ▦네, 맞는 지적입니다. 어떤 기술을 어느 업체, 어느 연구원이 갖고 있는지에 대한 정보가 부족합니다. 때문에 생기원은 중소기업이 직접 찾아와 쉽게 상담할 수 있도록 전국 11곳에 기업 밀착형 연구센터를 두고 기술지원본부ㆍ기술지원상담실을 운영 중입니다. 상담전화도 두고 있는데요, 상담전화는 한달에 50~60건씩 걸려오고 있습니다. 물론 홈페이지에도 ‘핫라인’을 개설, 인터넷을 통해서도 수시로 기업 애로사항을 접수받아 해결하고 있습니다. 이와 함께 산업기술연구회가 추진 중인 ‘중소기업 기술지원 허브사업’에 주도적으로 참여하고 있습니다. 산업계의 출연연구소가 보유하고 있는 인적ㆍ물적 기술자원을 쉽게 접근할 수 있도록 해 중소기업의 ‘정보부족’을 해소하자는 취지입니다. -기술의 융ㆍ복합 응용 역시 앞으로 산업기술의 경쟁력을 높이는 데 강조되는 분야가 아닌지요. ▦맞습니다. 기술과 기술을 접목하고 복합화하는 첨단기술 개발을 통해 기존 산업의 체질도 강화하는 한편 새로운 산업 분야를 발굴해 신성장동력을 찾자는 것인데요. 융ㆍ복합 응용기술 분야는 앞으로 육성해야 할 3대 분야로 선정된 상태입니다. 융ㆍ복합 기술 분야 중 지능형 로봇과 산업용 섬유, 웰니스 시스템기술 개발에 주력하고 있습니다. 인체치료용 고성능 메디칼 섬유나 판소리하는 로봇 에버 등이 대표적입니다. -저탄소 녹색성장의 근간이 된다고 말씀하신 청정생산시스템 분야의 기술 분야에 대한 좀더 자세한 설명을 부탁드립니다. ▦생산시스템은 자원을 제품으로 변환시키는 과정을 뜻합니다. 그런 생산시스템에다 ‘청정’을 가미해 공정의 최적화, 에너지 효율화를 이룰 수 있도록 하는 것인데요. 핵심은 생산공정의 자동화ㆍ청정화ㆍ지능화입니다. 이렇게 해서 에너지를 적게 쓰고 산업부산물도 줄이면서 남은 폐기물은 다시 자원화하는 기술을 개발하는 것입니다. 우리나라의 경우 성장과 환경을 두루 겨냥한 기술개발 역사가 그리 오래 되지 않았기 때문에 이와 관련한 우리나라의 기술 수준은 아직은 그리 높지 않습니다. 하지만 오는 2015년까지는 글로벌 톱10 도약을 목표로 산업원천기술 개발을 적극 추진 중입니다. -해조류를 이용한 바이오 에탄올을 생산하는 기술을 개발한 것으로 알고 있는데요. 실용화라든가 어떻게 추진되고 있는지요. ▦해양 바이오 연료는 식량자원 문제에서 자유로운 대체 에너지라는 측면에서 매우 중요한데요. 생기원은 해양 바이오 에탄올 원천기술을 보유하고 있으며 이를 효과적으로 실용화하기 위한 다양한 전략을 추진 중입니다. 실험 차원에서는 해조류를 이용한 바이오 에탄올을 만드는 데는 성공했습니다. 양산 전 단계인데요. 실용화를 위해 연구원 겸직의 창업형태로 ‘바이올시스템즈’를 만든 상태입니다. 다만 실용화와 관련해 앞으로 실증연구를 어떻게, 어떤 일정을 갖고 할지, 그리고 예산확보 문제 등을 종합해 세부일정을 마련 중입니다. ◎ 약력 ▦1957년 충북
▦1976년 청주고등학교
▦1980년 한양대 기계공학과(한국과학기술원 석ㆍ박사 취득)
▦1982년 과학기술처 기계사무관(기술고시 15회)
▦1983~1989년 KIST 선임연구원
▦1994년 일본기계기술연구원 초빙연구원
▦1989년 한국생산기술연구원 수석연구원
▦2001~2004년 한국생산기술연구원 선임연구본부장
▦2004~2006년 과학기술부 과학기술혁신본부 기계소재심의관
▦2007년 한국과학재단 국책연구본부장 파견
▦2007년 9월~ 한국생산기술연구원장 ◎ 나경환 원장은… 공직 떠나 KIST연구원…다시 생기원 창설멤버로
中企기술력 강화 지원에 앞장 나경환 생산기술연구원 원장의 이력은 독특하다. 한국과학기술원(KAIST) 4학년 재학 중이던 지난 1979년 제15회 기술고시에 합격했다. 공직에 들어가 당시 한국에 절실했던 '산업기술' 분야를 키워보자는 포부가 컸기 때문이다. 그러다가 공직생활을 그만뒀다. 현장경험을 더 쌓아야 겠다는 생각이 강해졌던 게 이유다. 당시는 국가주도의 경제발전을 하던 터라 공직을 포기하기는 쉽지 않았지만 나 원장은 곧바로 한국과학기술연구원(KIST)으로 옮겼고 연구원 생활을 하면서 KAIST 생산공학 박사 과정을 밟았다. 나 원장은 "KIST에 있을 때인 1980년대는 산업 고도화로 우리 경제의 체질이 바뀔 때였다"면서 "당시부터 중소기업 지원의 밑그림을 그렸다"고 말했다. KIST에서 안정적인 둥지를 틀고 있던 나 원장은 KIST를 떠나 1989년 생산기술연구원이 출범할 때 창설멤버로 합류했다. 나 원장은 "남들은 '도전'이라고도 말했지만 중소기업 기술지원을 현장에서 더 잘할 수 있겠다는 판단 때문에 택했다"고 말했다. 그래서일까. 나 원장 부임 후 생기원의 가장 큰 역할 중 하나로 '중소기업 기술지원'이 꼽히고 있는 것도 그의 이력과 연관이 깊다. "연구원들의 자랑을 해달라"는 요청에 나 원장은 "고맙다는 말로 대신하고 싶다"고 답했다. 나 원장은 "석ㆍ박사까지 마친 연구원들은 으레 자기가 관심 있는 분야의 연구만 하고 싶어하는 게 생리다. 나 역시 그랬다"면서 "하지만 생기원은 기업이 필요로 하는 연구를 수행해야 하기 때문에 (본인의) 의도와는 다른 연구를 해야 하는 게 다반사인데 이를 연구원들이 잘 따라주고 있다"고 그 이유를 설명했다. 1989년 생기원 출범 때부터 20년간 함께 해왔던 원장다운 답이다. 그만큼 연구원들의 고충도 잘 알고 있다는 이야기다. 1년에 수행하는 850~900개의 연구 프로젝트 대부분은 기업, 특히 중소기업의 필요에 의해 진행되고 있다. 나 원장은 생기원의 내부직원이 수장자리까지 오른 첫 사례다. 나 원장은 "그래서 부담도 더 크지만 직원들의 생리도 잘 알기 때문에 더 믿고 맡길 수 있다"고 말했다. 나 원장은 "아래 직원들이 일하는 것을 보면서 가끔 '나라면 이렇게 할텐데…'라는 생각도 들지만 그래도 믿고 맡긴다"면서 "그래야 시행착오도 거치고 연구원들도 성장해나가는 것 아니냐"고 했다. 휴대폰으로 나 원장에게 연락을 하면 '기술한국의 힘, 중소기업. 한국생산기술연구원이 함께 합니다'라는 전화 연결음이 나온다. 나 원장은 "당연한 것 아니냐"면서 "중소기업의 기술력 강화가 곧 경쟁력이라는 신념은 앞으로도 변함없다"고 힘주어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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