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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의 눈/11월 27일] 움직이지 않는 나라
입력2008-11-26 17:34:23
수정
2008.11.26 17:34:23
신경립 기자
경기가 너무 나쁘다. 기업이나 은행이나 서로 현금을 움켜쥐기 바빠서 필요한 곳으로 돈이 흘러가지 않는다. 미래에 대한 불안감 때문에 일반 소비자들은 물론이고 부자들까지도 지갑을 닫았다. 누가 먼저 무너질까 숨죽이며 서로를 지켜보는 형국이다. 대한민국 경제는 그야말로 ‘일시정지’ 상태다. 경제가 다시 활기를 찾으려면 적어도 3년은 걸릴 것이라는 전망이 파다하다.
움직이지 않는 것이 또 있다. 위기 상황에서 누구보다 선두에 나서야 할 공무원들이다. 경제난국 타개를 위한 ‘관치(官治)’의 필요성도 심심찮게 제기되고 있지만 정작 당사자인 관료들은 요지부동이다. 가랑비에 옷 젖듯이 경제가 서서히 가라앉고 그 와중에 은행들은 저만 살겠다고 돈줄을 죄고만 있는데도 정부는 이렇다 할 행동에 나서지 않고 있다.
10년 전 외환위기 당시 은행 임원들을 불러모아 기업대출 실적을 일일이 보고 받고 부진한 은행에는 ‘할당’까지 서슴지 않던 모습은 찾아볼 수 없다.
물론 이런 위기상황에서마저 공무원들이 꼼짝 않게 된 최대 원인으로 지적되는 것이 ‘변양호신드롬’이다. 지난 2003년 외환은행 매각을 주도했던 변양호 당시 재정경제부 금융정책국장이 헐값 매각의 혐의로 구속되면서 복지부동이 관료사회에 뿌리깊이 자리잡기 시작한 것이다.
한 경제관료는 “일 잘하고 소신 있는 공무원의 귀감이라고 생각했던 사람이 하루아침에 쇠고랑을 차는 모습을 봤으니 가급적 책임질 일은 피하려고 하지 않겠냐”고 한다. 맞는 얘기다. 위기 상황에서 불가피하게 내린 정책 판단이 몇년 뒤 치명적인 부메랑이 돼 돌아온다면 아무리 애국심이 투철해도 팔을 걷어붙이고 나설 수 있는 공무원은 많지 않다.
하지만 한편으로 ‘변양호신드롬’은 공무원들이 만들어낸 변명거리에 불과할 수 있다. 공직에 몸을 담았다면 국가의 이익을 위해 소신과 책임의식을 발휘해야 한다. 특히 지금처럼 나라 경제가 가라앉고 있는 위기시에는 더욱 그렇다. 나중에 발목 잡힐 수 있으니까 그냥 숨죽이고 있겠다는 것은 너무나 무책임한 발상이다.
물론 ‘나중에 형사적 책임을 물을 수도 있지만 우선은 총대를 매고 무슨 일이든 하라’는 식의 요구는 안 된다. 하지만 지금 공무원들은 스스로 신드롬의 틀에 갇혀 웅크리고만 있다. 24일 법원은 변양호 전 국장 등이 “정책상 불가피한 판단을 내린 것”이라며 무죄를 선고했다. 이제는 공무원들 스스로도 변명의 틀에서 벗어나야 한다. 온나라가 ‘정지’된 지금 먼저 움직여야 할 이들은 공무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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