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MF는 3일(현지시간) 홈페이지를 통해 '자본자유화와 자본이동 규제에 대한 제도적 시각'이라는 제목의 보고서를 발표했다. 그동안의 자본흐름 자유화 지지 기조에서 상황에 따라 직접적인 규제도 필요하다는 쪽으로 급선회한 것이 주요 내용이다. 보고서에서는 "자유로운 자본흐름이 전반적으로 경제와 금융에 혜택을 주지만 금융 시스템이 불완전한 국가에는 해가 될 수 있다"고 밝혔다. 특히 "(자본) 자유화에 따른 혜택이 충격보다 더 많아야 한다"며 "(자본) 완전 자유화가 모든 국가에 항상 적절한 조치라고 속단해서는 안 된다"고 강조했다.
한편 4일 정부는 청와대에서 개최한 국무회의에서 이 같은 내용의 '외국환거래법 시행령' 개정안을 심의, 의결하고 내년부터 은행이 외화예금을 늘릴수록 외환건전성부담금(은행세) 부담을 줄여주기로 했다. '제2의 외화방어막'을 구축하는 데 은행들이 직접 나서도록 정부가 강력한 인센티브를 제공한 셈이다.
"국제통화기금(IMF)이 자본통제 반대 견해를 철회했다."
IMF는 3일(현지시간) 홈페이지를 통해 공개한 '자본자유화와 자본이동규제에 대한 제도적 시각'이라는 제목의 보고서에 대한 파이낸셜타임스(FT)의 반응이다. 이처럼 이번 보고서의 핵심 내용은 전세계를 떠도는 자본에 대해 특정 국가가 족쇄를 다는 규제행위에 정당성을 부여했다는 점에서 IMF의 일대 변신으로 풀이된다. 지난 1945년 설립된 후 일관되게 자본시장 규제 완화를 주장해온 IMF가 글로벌 금융위기나 미국 등 선진국의 양적완화로 투기세력의 글로벌 금융시장 교란, 신흥국의 환율 급등 등 부작용이 속출하자 노선을 바꾼 셈이다. 이 때문에 한국ㆍ브라질 등 신흥국의 환율방어 전쟁에도 힘이 실린 것으로 보인다.
IMF는 지난해 초부터 이와 관련한 연구를 진행해왔으며 크리스틴 라가르드 IMF 총재는 지난달 필리핀에서 열린 한 기자회견에서 "자본흐름을 통제하는 일부 신흥국에 대한 시각이 유연해지고 있다"고 밝혀 입장변화를 시사했었다.
◇글로벌 자본에 족쇄 달기 일부 허용=IMF는 역사적으로 자본의 자유로운 흐름을 절대적으로 지지해왔으나 최근 글로벌 금융위기와 재정위기를 겪는 와중에 선진국마저 국가부도 위기에 몰리게 되자 이러한 방임정책에 문제가 있다는 점을 자인한 것으로 보인다. IMF는 보고서에서 "국경을 넘는 자본흐름은 근본적으로 부를 창출하지만 동시에 리스크도 전달한다"며 "완전한 자본자유화가 모든 나라에 적합한 목표는 아니다"라고 못박았다. 거시경제와 금융안정성을 위해서는 때에 따라 각국 정부가 자본흐름을 통제할 수 있다는 얘기다.
현재 자본흐름규제 정책을 펴는 나라로는 ▦일본ㆍ스위스(환시장 개입) ▦한국(선물환포지션한도) ▦브라질(외국인 투자자금 과세) ▦남아공(환율절상) ▦터키(저금리 유지) 등이 꼽혔다. 종전에는 이러한 형태의 자본규제를 모두 제한해야 한다는 게 IMF의 입장이었다.
IMF는 ▦거시경제 상황이 지극히 불안정하거나 ▦장기정책으로는 시장 안정효과를 낼 수 없을 경우 ▦해외자본이 급격히 빠져나가 환시장이 붕괴될 위기에 처했을 때 등 일부 상황에 따라 자본규제 정책을 도입할 수 있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비벡 아로라 IMF 어시스턴트 이사는 이날 월스트리트저널(WSJ)을 통해 "자본흐름의 손익을 따져 실용적인 틀을 만들 것"이라고 밝혔다.
◇한국ㆍ브라질 등 신흥국 영향은=IMF의 입장선회는 3차 양적완화(QE3)를 통해 막대한 달러를 찍어내는 미국과 이로 인해 쏟아져 들어오는 자본을 방어하는 데 급급한 신흥국 간 '환율전쟁'에 판도변화를 가져올 것으로 보인다.
보고서는 "방대한 자본흐름을 만들어내는 국가(미국 지칭)는 그들의 행동이 글로벌 경제와 금융안정성에 미치는 영향을 숙고해야 한다"는 점을 분명히 했다. 그동안 미국에 치중했던 IMF의 스탠스 변화를 읽어낼 수 있는 대목이다. 그동안 브라질 등 신흥국은 "미국의 양적완화로 자국 통화 가치가 치솟아 무역환경이 불리해진다"며 끊임없이 불만을 터뜨려왔다.
일단 한국 입장에서는 환율방어에 힘이 실릴 것으로 우리 정부 당국은 분석하고 있다. 기획재정부의 한 관계자는 "선물환포지션한도 등 우리의 자본흐름 관리활동에 정당성이 확인됐다는 측면이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설명했다. 추후 벌어질 수 있는 미국과의 환율다툼에서 논리적 우위에 서는 동시에 든든한 우군을 얻었다는 얘기다.
IMF 이사회에서 브라질을 대표하는 파울루 노게이라 바티스타 이사 역시 이날 파이낸셜타임스(FT)를 통해 "IMF의 결정이 여전히 자본자유화를 지지하고 있다는 점은 충분치 않지만 어쨌든 진전을 보인 것은 환영한다"고 밝혔다.
반면 장기적으로 봤을 때는 각국이 앞다퉈 자본시장에 개입해 환율전쟁과 같은 대규모 갈등이 더 빈번하게 일어날 수 있다는 분석도 나온다.
IMF는 통합감시활동(ISDㆍIntegrated Surveillance Decision)을 통해 글로벌 자본흐름에 대한 정책적 방향을 제시하는 역할을 하는데 앞으로는 자본규제를 긍정하는 방향으로 기조가 바뀔 수 있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현재는 자본통제를 실시하는 나라에 대한 경제전망이나 분석이 부정적으로 묘사되는 경우가 많았다면 앞으로는 '톤다운'이 이뤄질 수 있다는 것이다. 이 경우 해당 국가의 신용등급에 긍정적 영향이 나타난다든가 국채발행 여건이 나아지는 등의 효과를 예상해볼 수 있다. 한마디로 자본통제에 더 이상 부담을 갖지 않아도 된다는 얘기다.
재정부의 한 관계자는 "다만 이번 보고서만으로는 자본흐름 규제를 발동해도 되는 상황과 불가능한 상황에 대한 세부사항이 결정됐다고 보기는 어렵다"며 "이런 내용이 확정돼야 앞날을 예견할 수 있다"고 말했다. IMF는 앞으로 회의를 열어 세부사항을 결정하겠다고 이날 밝혔으나 기한을 못박지는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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