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의 역사학자 니얼 퍼거슨 하버드대학 교수가 지난 2007년 말 중국(China)과 미국(America)을 합성해 만들어낸 ‘차이메리카(Chimerica)’라는 신조어가 요즘 새삼스레 관심을 끌고 있다. 세계경제의 양대 거목인 미국과 중국이 각각 소비와 생산의 역할을 나눠 담당하면서 상호의존적 관계 속에 발전을 지속해왔다는 게 그의 주장이다. 실제로 최근 수년간 중국은 ‘메이드 인 차이나’ 상품을 대규모로 사주는 미국 덕분에 초고속 성장을 지속할 수 있었고 미국인들은 수출로 번 달러를 미국 국채에 투자하는 중국이 있었기에 낮은 이자율로 돈을 빌려 풍요로운 소비생활을 누릴 수 있었다. 그야말로 ‘행복한 동거’였다. 그러나 이 같은 차이메리카의 구도가 미국발 글로벌 금융위기가 터지면서 한계에 부딪혔다. 무엇이 문제였을까. 미국은 중국을 탓한다. 벤 버냉키 연방준비제도이사회(FRB) 의장은 “미국과 세계경제가 최근 심각한 문제에 봉착한 근본원인은 상당부분 중국에 있다”고 비난했고 티머시 가이스너 재무장관은 “미국의 최대 무역국인 중국은 환율을 조작하고 있다”고 공세를 폈다. 이에 대해 중국은 어이가 없다는 반응이다. 장?컹?인민은행 연구국 국장은 “글로벌 위기의 원인을 중국의 무역흑자에서 찾는 것은 강도(强盜)의 논리”라고 목소리를 높였고 원자바오 총리는 다보스포럼에서 “일부국가의 잘못된 거시정책이 위기를 불렀다”며 미국 측을 우회적으로 비판했다. 이처럼 거세지는 미ㆍ중 간의 공방을 지켜보면서 ‘통상전쟁’이 벌어질 수도 있다는 얘기가 나온다. 하지만 지금으로서는 말싸움에 그칠 공산이 더 커보인다. ‘공조’ 대신 ‘갈등’을 선택했을 때 초래될 심각한 부작용을 미ㆍ중 모두가 너무나도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버락 오바마 대통령이 가이스너의 발언에 대한 중국 측의 서운함을 달래기 위해 부랴부랴 후진타오 주석에게 전화를 건 일이나 중국 지도자들이 미ㆍ중 관계의 중요성을 힘써 강조하는 것이 다 같은 맥락이다. 다만 분명히 달라진 것은 이번 금융위기로 미ㆍ중 간 힘의 균형에 변화가 생기고 있다는 점이다. 최근 작고한 새뮤얼 헌팅턴은 일찍이 1966년에 “21세기의 막바지 25년간 미국의 세력은 쇠퇴하고 그 공백을 다른 나라가 채우게 될 것이다. 그 가운데 가장 두드러진 역할을 담당할 나라는 바로 중국이다”고 예언했다. 그리고 지금 미국인들의 탐욕스러운 소비는 헌팅턴의 예언을 앞당겼고 중국인들은 그 기회를 놓치지 않으려 안간힘을 쓰고 있다. 생산과 소비의 단순한 역할분담을 넘어 세계 패권을 미국과 더불어 양분하려는 중국인들의 야심이 새로운 차원의 ‘차이메리카’ 시대를 열어가고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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