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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장 미켈란젤로는 꿈틀대는 생명성을 품은 돌을 찾아 전 유럽을 헤매다 이탈리아 북서부(토스카나주) 해안가에 자리를 잡았다. 이름마저 '성스러운 돌'이라는 뜻의 피에트라 산타(Pietra Santa)시가 그곳이다. 바로 옆에는 도시 전체가 대리석 석산(石山)인 카라라(Carrara)가 위치하고 있다. 르네상스 시대부터 시작된 '조각 명품도시'의 역사는 후안 미로, 헨리 무어, 마리노 마리니, 살바도르 달리, 아르망으로 이어졌다. 지금도 페르난도 보테로, 줄리아노 반지 등의 조각가들이 작업하고 있으며 데미안 허스트나 제프 쿤스, 마크 퀸 같은 현대미술가들도 석조 작업만은 이곳 공방을 찾는다.
쟁쟁한 조각가들 만이 인정받는 이곳에서 '한국의 손맛'을 과시하고 있는 박은선(47) 작가가 이탈리아 활동 20주년을 기념한 대규모 초대 개인전을 연다. 토스카나 주 안에서도 유서 깊은 휴양도시인 포르테 데이 마르미(Forte dei Marmi) 시가 주최한 전시회로 오는 14일부터 8월12일까지 약 한달 간 '파운데이션 빌라 베르텔리' 내 야외전시장에서 과거 작품부터 최근작까지 총 75 점의 작품을 선보일 예정이다.
포르테 데이 마르미 시는 피에트라 산타 시 인접도시로 작가들이 대체로 조각 공방은 피에트라 산타에 두고, 거주는 포르테 데이 마르미에 하고 있어 사실상 같은 명품 조각도시의 권역이다.
조각가 박은선의 이번 개인전은 여러 면에서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 예술적 자부심이 높은 이탈리아에서, 그것도 조각의 본고장에서 시(市)정부가 한국인 조각가의 개인전을 주최한다는 것은 개인의 역량은 물론 미술한류인 'K-Art'의 위력을 인정했다는 것으로 평가된다. 또한 전시가 열리는 포르테 데이 마르미시는 유럽의 부호를 위시한 슈퍼리치들이 여름을 보내는 휴양도시라 문화적 심미안과 소비력이 상당히 높은 곳이기 때문에 이곳에서의 도심 조각전은 유럽 작가들도 서로 탐내는 전시로 알려져 있다. 따라서 이번 전시는 박은선의 작품이 한국성이라는 이국적인 분위기를 넘어 유럽 조각계 본류와 동등한 대우를 받고 있음을 확인시키는 자리이기도 하다.
전시 주최자인 움베르토 부라티 포르테데이마르미 시장은 "우리(이탈리아) 예술가들의 작품을 보존하는 동시에 지역 주민과 관광객들이 만족할 만한 국제적 명성의 작가를 선보이려는 노력의 일환으로 박은선 작가를 선정했다"며 "지역 전통과 국제미술의 이질성을 두루 갖춘 그의 작품은 우리 시의 절충주의(折衷主義ㆍeclecticism)적 현실을 상징한다"고 극찬했다. 박은선 작가는 "이탈리아 활동 20주년을 맞는 시점에 이처럼 의미 있는 전시가 열리게 돼 기쁘다"고 간단히 소감을 밝혔다.
1993년 카라라국립아카데미로 유학을 떠난 박 씨는 이탈리아는 물론 스위스ㆍ벨기에ㆍ독일ㆍ네덜란드 등지에서 호응을 얻으며 두터운 컬렉터 층을 확보했다. 두 가지 색의 대리석판을 번갈아 쌓아 올리며 형태를 만드는 그의 작품은 기하학적인 세련미와 함께 음과 양, 직선과 곡선이 하나로 결합되는 동양적 정서를 확보하고 있어 '동양적 추상조각'으로 유럽인들에게 사랑받고 있다. 특히 작품 중간에 의도적으로 만든 균열(틈)은 일종의 '숨통'으로 생명력을 더해준다.
박은선은 앞서 2007년에 한국인 최초로 피에트라 산타 시 초청의 해변공원 전시를 열었고, 2009년에는 조각 명문인 마리노마리니 미술관에서 개인전을 열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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