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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벨탑 처럼… 소통없는 문명 붕괴 경고

■ 미디어아티스트 최선명 개인전<br>바벨탑 무너지는 모습 현대 영상작품으로 표현<br>눈밭 위의 나무 등 신작 드로잉도 선봬


유사이래 요즘처럼 소통의 도구가 발달한 적은 없었다. 그러나 역설적으로 '소통의 부재'에 대한 탄식은 그 어느 때보다 잦다. 미디어아티스트 최선명(52)은 그래서 바벨탑을 쌓았다. 구약성서 창세기 편의 바벨탑을 현대적 기술로 제작한 영상작품이다. 차곡차곡 쌓여 올라가던 바벨탑은 완성되기 직전에 무너져 내린다. 안타까운 순간이지만 투명한 푸른빛의 벽돌이 무너지는 장면은 꽃망울이 터지듯 아름답고, 중력이 3분의 1만 작용하는 속도로 떨어지기에 신비감이 배가된다.

작가는 "바벨탑의 붕괴는 문명의 무너짐을 보여주는 것"이라며 "아무리 견고한 문명일지라도 언어가 추상화ㆍ코드화 돼 즉각 이해할 수 없을 때, 소통이 잘못되기 시작할 때 파괴가 시작된다"고 진지하게 경고한다.

쏟아지는 벽돌과 함께 문자들도 눈처럼 쏟아진다. 유럽 기원의 언어인 히브리어ㆍ아랍어ㆍ영어ㆍ라틴어가 동서남북으로 흩어진다. 민족과 언어로 갈라지는 상황이지만 작가는 이 안에 "언젠가 이들이 한 데 모일 것"이라는 바람도 담고 있다.

뉴욕에 거점을 두고 활동중인 최선명이 4년만에 국내에서 개인전을 열었다. 서울 종로구 통의동 갤러리시몬을 찾으면 그의 최근작들을 볼 수 있다. 미술가이지만 그의 접근방법이나 태도는 과학자에 가깝다.

특히 물리학에 관심이 많은 작가는 아름다운 색의 근본이 빛의 파동이라는 과학적 사실에서 그림을 시작했다. 시간의 흐름을 빛의 변화를 통해 구현하려는 그의 노력은 일찍이 인상주의(Impressionism) 화가들이 추구했던 것과 같다. 모네의 경우 빛의 변화를 관찰하며 같은 장소의 같은 대상을 다른 시간대에 그린 '수련','해돋이'와 '해넘이','루앙 성당' 등의 연작을 남기기도 했다.



인상파 화가보다 '진화한' 최선명은 한 장의 그림에서 '변화하는 빛'을 만들어 냈다. 회화로 채워진 2층 전시장의 작품들은 실제로 관람객이 보는 위치에 따라 분홍ㆍ파랑ㆍ노랑ㆍ초록 등으로 오묘하게 색이 변화한다. 빛이 투과해 색이 비칠 정도로 얇게 물감을 칠한 다음, 마르기를 기다렸다가 덧칠하기를 수십 수백 번 반복한 결과다.

3층에는 기하학의 프랙탈(Fractal.한 부분이 전체와 닮은 형태)이론에 기반한 신작 드로잉을 선보였다. '부분이 전체를 대변한다'는 자기유사성의 프랙탈 원리로, 최선명 작가는 눈밭 위의 나무를 그렸다. 3개로 갈라진 나뭇가지는 반복적으로 3개씩 증식해 풍성한 나무를 이룬다. 아름다움과 과학적 논리, 감성과 이성을 동시에 지닌 작품이다. '보지 못하는 것들의 증거'라는 제목이 붙은 이번 전시는 7월1일까지 열린다. (02)549-30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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