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일 AP통신 등에 따르면 크림자치공화국은 유권자 150만명을 대상으로 우크라이나로부터 독립 여부를 묻는 주민투표에 들어갔다. 투표 결과는 17일 발표될 예정이지만 현지 언론 등에 따르면 '러시아와의 즉시합병'안이 통과될 것이 확실시되고 있다. 또 투표 결과가 발표된 후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은 크림반도 합병을 위한 법적 절차를 밟을 가능성이 높다.
이에 따라 미국과 유럽연합(EU)은 이르면 17일부터 본격적인 제재에 들어가기 위해 준비를 진행하고 있다. 서방의 제재는 가장 먼저 푸틴 러시아 대통령의 측근 정치인과 기업인들에 대한 여행금지 및 해외재산 동결이 될 것으로 보인다. 이에 따라 러시아 기업들은 자산이 동결되기 전 서방 은행들로부터 수십억달러를 인출하는 등 분주히 대응하고 있다. 파이낸셜타임스(FT)는 "러시아 루코일과 같은 기업뿐 아니라 VTB와 같은 러시아 국영은행들도 서방 은행들로부터 자금을 급히 빼내고 있다"고 전했다.
이에 앞서 지난 15일 러시아는 처음으로 크림반도외 우크라이나 본토에 대한 기습 점령을 감행했다. AP통신에 따르면 계급장을 달지 않은 군인 120여명이 헬리콥터를 타고 우크라이나 남부 지역이자 크림반도와 북쪽으로 접해 있는 헤르손 지역의 해안마을 스트렐코보예에 침투했다. 이들은 이 지역에 위치한 천연가스 공급기지를 장악한 것으로 알려졌다. 우크라이나 정부는 전투기를 긴급 발진시키고 지상군을 동원하는 등 즉각 반격했다. 그러나 총격전이나 사상자가 발생하지는 않은 것으로 알려져 러시아군이 교전을 벌이지 않고 후퇴한 것으로 보인다. 우크라이나 국방부는 성명을 통해 "우크라이나 군인들이 러시아군을 몰아냈다"고 밝히고 이번 사건을 "러시아의 무력침공"이라며 규탄했다. 미국도 이날 러시아군의 우크라이나 본토에 대한 기습 점령에 대해 "충격적인 긴장 고조 행위"라고 맹비난했다.
이밖에도 러시아는 투표를 앞두고 크림자치공화국의 수도 심페로폴 외곽에 있던 병력을 증강한 동시에 병력 일부를 시내 중심부로 이동시켰다. 특히 선거위원회 본부 외부에 대형 군용 트럭을 세워두는 등 삼엄한 경비를 서고 있다.
러시아가 선거를 앞두고 이 같은 강수를 둔 것에 대해 외신들은 더 이상 외교적 해법의 여지를 두지 않겠다는 뜻으로 풀이했다. 서방은 투표 이후 러시아의 반응에 따라 제재 수위를 결정하고 외교적 해법을 모색한다는 입장이었다. 뉴욕타임스(NYT)는 "이번 점령의 전략적 목표가 무엇인지는 확실하지 않지만 이는 러시아가 미국과 EU에 강력한 메시지를 보내는 동시에 크림반도에 대한 외교적 해법은 사실상 힘들다는 점을 보여준 것"이라고 16일 보도했다.
최악의 경우 우크라이나 동부 지역에 대한 러시아의 추가 무력침공 가능성마저 제기되고 있다. 우크라이나 동부 지역에서는 러시아어를 쓰는 친러시아계 주민들이 연일 러시아 지지 시위를 벌이고 있다. 이에 대해 러시아 외무부는 15일 "(우크라이나 내 러시아계) 시민들로부터 보호해달라는 요청을 받고 있으며 이에 대한 검토를 하고 있다"고 밝혔다. 이는 러시아가 크림반도를 장악하기 전에 내놓았던 입장과 유사해 크림반도를 점령한 방식과 같은 방법으로 추가 침공이 이뤄지는 게 아니냐는 우려가 커지고 있다. 알렉산드르 투르치노프 우크라이나 대통령 권한대행은 지난주 말 의회에서 "러시아의 우크라이나에 대한 침공 가능성은 과장이 아니라 실제적 위험"이라고 경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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