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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스크 칼럼] JP모건의 유산
입력2007-11-26 17:11:04
수정
2007.11.26 17:11:04
지난 20세기 미국 금융의 역사는 JP모건의 역사였다. JP모건은 미 연방준비제도이사회(FRB)가 설립되기 이전에 중앙은행처럼 군림했다. 20세기 초반에 미국에 금융위기가 다가오면 JP모건이 대형 은행들에서 돈을 모아 부도에 직면한 중소 금융기관에 구제금융을 주었다.
파산한 뉴욕시를 세 번이나 구제해준 것도 이 은행이었다. 미국의 JP모건과 모건스탠리, 영국의 모건그렌펠을 합쳐 모건하우스로 불린 이 공룡기관은 철도회사를 묶어 트러스트를 조직하고 그 노하우를 활용해 운하와 제철소, 해운회사 트러스트를 만들어 미국 경제를 좌지우지했다.
JP모건은 1ㆍ2차 세계대전을 미국과 영국의 승리로 이끈 주역이다. 영국이 독일과 외로이 싸울 때 미국에서 군수물자를 조달해 지원했고 미국 정부로 하여금 전쟁에 참여하도록 로비를 해 전세를 바꿨다.
하지만 모건하우스의 절대적인 시장지배력은 많은 적을 양산했다. 각종 스캔들과 주가조작 사건에는 JP모건이 약방의 감초처럼 끼었고 마침내 20세기 초 대주주 피어폰트 모건은 의회청문회에 불려나가는 수모를 당했다.
그 정도는 약과다. 대공황이 터지고 미국 경제가 서버리자 국민들은 JP모건에 그 책임을 돌렸고 프랭클린 루스벨트 대통령의 민주당은 글래스-스티걸법을 제정해 상업은행과 투자은행의 겸업을 금지하고 금산 분리의 원칙을 세웠다. 이에 모기업인 JP모건은 예대업무에 집중하는 상업은행에 전념하고 자회사로 만든 모건스탠리가 투자은행의 업무를 맡는 내용으로 모건하우스는 쪼개졌다.
2차 세계대전 후 모건하우스는 뉴욕 월가의 치열한 경쟁 속에서도 선두의 위치를 유지했다. 하지만 1980년대 이후 서서히 경쟁력을 잃어 몇 년 전 JP모건은 체이스맨해튼은행에 흡수 합병되고 모건스탠리는 골드만삭스와 메릴린치에 뒤처졌다.
미국 금융시장은 이제 JP모건의 그늘에서 완전히 벗어났다. JP모건을 겨냥해 입법화된 글래스-스티걸법은 1990년대 말에 폐기됐다.
그러나 정작 한국의 금융산업은 아직도 JP모건의 망령에 사로잡혀 있다. 미국 금융시장의 역사와 전혀 상관없는 이 나라에 대공황 때 미국에서 만들어진 글래스-스티걸법이 금융규제의 절대적인 잣대인 양 활용돼왔다.
내년부터 자본시장통합법이 시행되면서 한국판 반JP모건 입법의 일각이 허물어진다. 하지만 금산분리의 원칙은 아직도 금과옥조인 양 받들어 모셔지고 있다. 당시 미국에서는 금융업이 산업자본을 장악했고 따라서 이 원칙은 금융업이 산업자본을 장악하지 못하도록 금지한 것이다.
그런데 한국에서는 산업자본이 금융업에 진출하지 못하도록 역으로 적용되고 있다. 따라서 70년 전에 미국의 정치 갈등에서 만들어진 금산분리의 원칙을 시대에 맞게, 우리의 현실에 맞게 고쳐야 할 때가 왔다.
JP모건의 역사에서 배워야 할 점은 금융산업이 국가 이익에 부합해 육성돼야 한다는 점이다. JP모건이 20세기 미국과 영국이 대변하는 앵글로색슨 시대를 열었듯이 한국의 국력확장에 금융산업이 동반해 참여해야 한다. 모건하우스는 1ㆍ2차 대전 기간에 국제정치의 파워 브로커였다.
세계 각국의 왕과 대통령, 교황의 전폭적인 신뢰를 받으며 워싱턴 정가를 연결했고 그들 뱅커는 미국의 이익을 위해 뛰었다. 한국의 은행들은 이제 해외로 나가려고 한다. 제조업이 앞서 해외에 진출했지만 한국 금융은 따라 외출하지 못한 게 현실이다. 한국 금융기관도 우리 기업의 이익을 위해 뛰고 그렇게 함으로써 한국의 국제적 위상을 높여야 할 때다.
JP모건은 1차 대전을 전후로 영국 런던의 더씨티를 제치고 미국의 뉴욕 월가를 세계 금융 중심지로 발돋움하게 하는 데 결정적인 기여를 했다. 동북아 금융허브를 외친 지 10년 가까이 지나도록 그 결과가 가시적으로 나타나지 않는 것은 정부의 탓도 있지만 우리 금융산업이 성숙하지 못한 데서 원인을 찾아야 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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