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출권거래제의 시행시기는 얼마 남지 않았지만 시장교란 행위를 차단하고 관리 감독하는 제도가 마련되지 않아 시세조종 등의 위험에 놓여 있다. 유럽의 사례를 비춰봤을 때 배출권은 가격 탄력성이 커서 시장교란 행위가 언제든 발생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유종민 자본시장연구원 연구위원은 "유럽의 배출권은 지난 2006년 1톤당 14유로에 거래됐지만 2007년 말께 수요부족으로 가격이 0유로에 수렴했고 2008~2011년에는 15.8유로에 거래됐지만 올 들어 경기침체로 5.7유로로 다시 폭락했다"며 "배출권거래제는 정부가 일방적으로 공급을 결정하는 시스템이어서 극심한 가격변동성을 지니고 있다"고 설명했다.
배출권은 가격변동성이 높은데다 초기 거래가 원활하지 않을 것으로 예상돼 소수의 주문으로도 가격이 크게 변할 위험에 노출됐다. 이로 인해 통정매매 등 시장교란 행위가 발생할 가능성이 있다. 가령 A업체와 B업체의 배출권 담당자들이 담합해 높은 가격의 주문을 내고 이를 받아주는 방식의 통정매매로 가격이 급등할 수 있고 통정매매에 가담한 이들이 가격을 올린 뒤 보유분을 팔고 나올 수 있다. 또 허수주문 등 가장매매로 가격을 인위적으로 조정할 수도 있다.
이럴 경우 한국거래소가 시장 이상징후를 포착한 뒤 해당 기업을 조사해야 하지만 온실가스 배출권의 할당 및 거래에 대한 법률에 따르면 한국거래소에 포괄적인 조사권한이 주어지지 않는다. 또 주식 등 금융상품의 경우에는 한국거래소가 금융위원회와 금융감독원에 통보하면 금융위에서 검찰에 고발하거나 직접 압수수색을 통해 범죄행위를 밝혀내는 등 시장감독 과정이 명확하지만 온실가스 배출권은 한국거래소가 시장 이상징후를 포착하면 주무 부처와 협의한다는 수준의 합의만 이뤄져 있어 실제 부정행위가 발생할 경우 이를 바로 잡아내기가 쉽지 않다. 또 최근 초단타매매 등 금융거래수법이 발전하고 있지만 환경부가 시장교란 행위 등에 대해 전문성이 없어 발 빠른 대응이 어렵다는 지적이다.
배출권은 또 투기수요에 대해서도 취약점을 드러내고 있다. 정부는 배출권의 월평균 가격이 6개월 연속 직전 2개 연도 평균가격의 3배 이상 오르는 등 가격이 급변할 경우 배출권을 추가 할당하는 등의 시장안정화 조치를 마련했다. 하지만 투기세력이 이를 역이용할 수 있다는 지적이다. 정부는 매년 배출할 수 있는 배출권을 정해 놓은 탓에 배출권을 무한정 추가 할당할 수 없는 상황이다. 투기세력은 정부가 배출권 총량을 지켜야 한다는 한계를 약점 삼아 지속적으로 물량을 매수하며 가격을 올린 뒤 높은 수익을 챙기고 떠나는 전략을 세울 수도 있다. 유 연구위원은 "배출권거래제는 정부가 시장에 개입해 적극적으로 관여하는 방식"이라며 "1997년 외환위기 당시 정부가 원화 평가절하에 베팅하는 투기세력으로부터 목표환율을 지키지 못한 점을 떠올리면 정부의 인위적인 가격통제가 역효과를 가져올 위험성이 있다"고 설명했다.
배출권거래제가 이처럼 시장교란의 위험에 노출돼 있지만 환경부는 금융위 등과 논의 중이라는 원론적 입장만 밝히고 있다. 산업계의 배출전망치(BAU) 재산정 요구 등 굵직한 이슈에 휘말려 환경부가 시장교란 행위에 대해서는 안일하게 대처하고 있는 상황이다. 환경부의 한 관계자는 "배출권거래제는 550여기업만 시장에 참여해 실물을 거래하는 방식이어서 시장교란 행위가 많지 않을 것으로 본다"며 "현재 시장교란 행위에 대한 조사와 관리 감독 등에 대해서는 검찰·금융위 등과 계속 논의하고 있어 협력이 가능하다"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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