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축가들이 설계를 할 때는 단독주택처럼 작은 건축물부터 시작해 점차 큰 것으로 늘려가는 게 일반적이다. 기본이 되는 작업을 할 줄 알아야 다양한 방식의 응용도 가능하기 때문. 삼성미술관 ‘리움’, 교보문고 강남점 등을 설계한 세계적 건축가 마리오 보타 역시 블록형 단독주택 설계로 명성을 쌓아왔다. 세곡동 은곡마을에 위치한 단독주택 ‘안진당’은 2층짜리 단독주택으로 소규모 건축물이다. 이 집을 디자인한 유일건축사사무소의 임해인 대표는 “한 가정의 안식처가 되는 단독주택은 가장 쉽지만 가장 어렵기도 한 작품 소재”라며 “특정인이 소유하고 생활하는 공간이기 때문에 고객의 니즈를 충족시키면서도 설계자의 개성을 가장 잘 드러낼 수 있다”고 말했다. 건축주는 처음에 이 집을 의뢰할 때 지중해 연안의 스페인 색채를 풍기는 디자인을 요구했다. 또한 방송작가인 아내를 위해 작업실을 마련해줄 것도 부탁했다. 건축가는 주변의 20년 이상 된 낡은 주택들 사이에서 혼자만 튀지 않는, 그러나 의뢰인의 의도를 모두 담아내는 것에서 작업을 시작했다. 일단 집이 위치한 대지의 특성을 파악하는 것이 중요했다. 막다른 골목 끝에 위치한 집은 비스듬하게 골목과 마주하고 있었다. 마당에서 보는 것뿐만 아니라 골목쪽에서 봤을 때의 각도를 고려해 집 모서리 부분을 사선으로 배치했다. 각이 생기면서 전면에서 보는 것과 사선으로 볼 때의 느낌이 달라지고 규모가 조금 더 커보이는 인위적인 효과도 가져왔다. 집이 위치한 북쪽과 마당ㆍ정원이 들어선 남쪽은 지형의 높낮이가 달라 서로 분리되는 느낌이 들게 했다. 아파트에서 오래 살았던 부부는 생활하기 편리한 집을 원했다. 설계자는 1층은 공동생활과 작업이 가능한 공간으로 꾸몄다. 현관을 중심으로 한쪽에는 주방과 거실, 다른 한쪽에는 작업용 스튜디오가 들어섰다. 현관 옆쪽에 위치한 작은 중정(中庭)은 여러 역할을 담당한다. 중정은 거실과 작업실을 자연스럽게 분리하고 각각의 프라이버시를 지켜주며 2층, 그 위쪽의 투명한 유리로 연결된 천장까지 이어져 집안으로 햇빛을 끌어들이기도 한다. 또한 메마르기 쉬운 집안 분위기를 바꿔줄 수 있는 하나의 작은 정원이 되기도 한다. 2층에 위치한 테라스는 안방과 자녀들의 침실을 구분하면서도 한옥의 마루와 같은 느낌을 준다. 바깥쪽으로 위치한 베란다와 함께 동ㆍ서양의 느낌을 한 집에서 얻게 한다. 외부 마감은 스터코(진흙 방식)와 목조ㆍ라임스톤 등을 사용했다. 지나치게 도시적이지 않고 친근하고 아늑한, 새 집인데도 마치 몇 년을 지내온 집과 같은 분위기가 들게끔 만들었다. 건축가는 이런 가운데에서도 발코니 부분의 알루미늄 플레이트를 통해 모던함을 뽐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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