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와 한나라당이 재정운용에 대해 다소 엇갈린 입장을 보였다. 정부는 경기회복에 대한 확신이 설 때까지 재정확장정책을 유지해야 한다는 입장이지만 한나라당은 재정건전성에 대한 우려가 우선이다. 재정정책의 기조 설정은 내년 나라살림을 짜는 데 가장 뼈대가 되는 것으로 논의 초기 단계부터 당정 간 입장차가 미묘하게나마 노출됨에 따라 앞으로 야당 등과의 협의 과정에서도 상당한 진통이 예상된다. 정부와 한나라당은 12일 ‘최근의 경제동향과 내년도 재정운영 방향’에 관한 당정 협의회를 열었지만 뾰족한 결론을 내리지 못했다. 당정은 원론적인 수준에서 “재정건전성 문제를 유념해가면서 재정의 적극적인 역할을 당분간 지속해나간다”는 정도의 의견을 내놓았다. 일단 현 경제상황에 대해서는 전일 이성태 한국은행 총재의 말처럼 경기하락세는 멈춘 것으로 당정은 판단했다. 김광림 한나라당 3정조위원장은 “현재 경제상황은 정부가 당초 예상했던 -2% 성장보다는 조금 개선되고 있으며 그동안 재정이 신속하고 충분하게 대처한 효과를 보고 있다”고 말했다. 경기상황이 바닥에 근접한 것에는 동의하지만 향후 재정정책의 방향에 대해서는 당정의 입장이 달랐다. 한나라당 일부에서는 경제상황이 호전되고 있는 만큼 악화된 재정건전성을 살펴봐야 한다는 입장을 내놓고 있지만 정부로서는 경기회복을 100% 확신하지 못하는 상황에서 당장은 재정건전성에 대한 걱정보다는 확장기조가 유지돼야 한다는 입장이다. 윤증현 기획재정부 장관은 “민간 부문이 자생적 회복력을 보일 때까지 현재의 확장기조를 유지하고 경쟁력 제고 노력을 일관성 있게 추진하겠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기획재정위원회 간사인 이혜훈 의원은 “정부로부터 각 부처 예산을 아직 받아보지 않았고 전체 예산규모를 아직 가늠할 수 없어 확장기조 유지 여부를 논의하기에는 이르다고 판단한다”고 말했다. 하지만 정부로서도 재정건전성 악화를 그대로 두고 볼 수만은 없는 상황이다. 올해 국가채무는 366조원으로 국내총생산(GDP)의 38.5%까지 늘어났고 관리대상수지는 51조원의 적자를 기록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용걸 재정부 2차관은 “재정의 역할과 건전성 둘 다 봐야 한다”며 “지금은 어느 한쪽에 방점을 찍기보다는 경기흐름을 지켜보고 결정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한편 이날 당정은 기획재정위원회에 계류 중인 교육세법 폐지법안을 6월 국회에서 반드시 처리하기로 합의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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