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증시폭락으로 '중국식 자본주의'의 민낯과 한계가 그대로 드러났다. 한 달 보름 동안 4,000억달러(한화 약 480조7,200억원)를 쏟아붓고 연이어 경기부양책을 내놓았음에도 중국 증시는 공포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중국 정부도 시장에 손을 들었다. 36년 전 덩샤오핑이 말했던 하얀 고양이와 검은 고양이는 이제 호랑이가 돼 주인을 위협하고 있다. 선젠광 미즈호증권 이코노미스트는 "아이(시장)가 커서 어른이 됐는데 엄마(정부)는 여전히 아이 다루듯 한다"고 지적했다.
지난 7월3일 닷새간의 유럽 순방을 마치고 베이징으로 돌아온 리커창 총리는 바로 증시 관련 회의를 소집했다. 이 자리에서 리 총리는 책상을 내리치면서 증시 폭락 대책을 마련하라고 호통을 쳤다는 후문이다. 다음 날 중국 증권당국은 증권사 대표들을 소집한 후 21개 대형 증권사가 1,200억위안을 상장지수펀드(ETF)에 투자하고 기업공개(IPO)를 연기하는 대책을 발표했다. 하지만 대책은 먹혀들지 않았다. 한 차례 폭락을 경험한 시장은 리 총리의 호통에 꿈적하지 않았다. 월스트리트저널(WSJ)은 "중국 지도부가 경제운용의 감을 잃어버렸다"며 "시장원리를 깨는 대책이 먹히던 시대는 지나갔다"고 혹평했다.
◇너무 커진 시장, 정부 통제력을 넘어섰다=강력한 정부 리더십을 바탕으로 성장가도를 달리던 중국 경제가 기로에 섰다. 증시폭락은 중국 경제가 더 이상 정부의 뜻대로 움직이지 않는다는 것을 여실히 보여줬다. 최소한 지금까지는 정부와 시장의 힘겨루기에서 정부가 완패한 분위기다.
중국 인민은행은 경기둔화에 증시폭락까지 겹치자 지난해 11월 이후 기준금리만 다섯 차례, 지급준비율은 네 차례나 내렸다. 25일에는 두 달 만에 금리와 지준율을 동시에 인하하는 강수를 뒀다. 유동성도 계속 풀었다. 역환매조건부채권(RP) 거래를 통해 시장이 빠질 때마다 자금을 수혈했다. 증시에 대한 직접 개입의 강도도 높였다. 국유기업 등을 통해 주식을 사들이고 대기업 대주주가 지분을 처분하지 못하도록 압력을 행사했지만 시장의 반응은 차가웠다. 유통주식의 81%를 거래하는 싼후(散戶·개미투자자)들의 투매는 멈추지 않았다. 시장은 더 이상 정부를 믿지 않고 있다. 장밍 중국사회과학원 선임연구원은 "증시폭락에 대한 정부의 대책 부재는 경제정책 전반에 대한 신뢰도를 떨어뜨리고 있다"고 말했다. 중국 정부 정책의 신뢰도 추락은 갑작스런 위안화 평가절하 정책을 경기 불안감 확산으로 만들었다. 니혼게이자이는 "정책 변경 의도를 충분히 설명하지도 않고 갑작스럽게 제도를 변경해 경기둔화 우려를 고조시켰다"며 "시진핑 정부가 시장 위기에 둔감한 것 같다"고 지적했다.
◇관 주도 성장, 이제는 경제위협 부메랑=중국 경제의 잠재된 악재들도 증시폭락에 민낯을 드러냈다. 신창타이(뉴노멀)와 일대일로 등 대형 프로젝트에 가려졌던 과잉생산, 지방정부 부채 등은 시장의 변화를 적기에 적응하지 못한 정책운용의 실패라는 분석이 나온다. 2008년 4조위안의 경기 부양으로 발생한 과잉생산에 대한 구조조정이 고용유지 정책에 늦춰지며 제조업 경기 침체라는 더 큰 악재로 되돌아오고 있다. 18조위안에 달하는 지방 부채는 중국 경제의 아킬레스건이다. 경기둔화에도 빚을 갚기 위한 개발이 이뤄지지 않으면 지방정부 디폴트(채무불이행)라는 최악의 사태를 불러올 수 있다. 올해 만기가 돌아오는 3조383억위안의 지방 부채에 대한 차환발행은 유동성을 흡수하며 증시에 악재로 작용했다. 가장 큰 문제는 기업의 실적이다. 수출 경기 둔화에 따른 기업 실적 악화는 중국 경제 회복을 더디게 한다. 과잉생산으로 늘어난 기업 채무를 줄이고 기업 구조조정을 위해 주식시장을 활용하려 했던 리 총리의 전략은 중산층의 파산이라는 결과를 낳고 있다.
그래도 중국 정부는 통제에 대한 미련을 버리지 못한다. 26일 신화통신에 따르면 중국 공안은 증권감독관리위원회 직원과 경제매체 차이징의 직원을 내부거래 및 허위 공문서 작성, 유언비어 유포 혐의로 체포했다. 또 하이퉁·화타이·광파·팡정 등 대형 증권사 4곳은 증감회의 조사를 받고 있다. 6월에는 과열억제를 위해 나섰던 공안이 지금은 폭락을 막기 위해 나서는 웃지 못할 상황이 연출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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