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부펀드가 추락하는 뉴욕 월가 은행들의 구원투수로 나선 진짜 속내는 무엇일까. 저가매수를 노린 투자였다면 왜 버크셔 해서웨이의 워런 버핏 회장이나 뉴욕 월가의 다른 거물급 투자자들은 큰 관심을 보이지 않았을까. 중국와 중동 등 막대한 보유외환을 쥔 국부펀드들이 모기지 부실로 신음하는 국제 금융시장에 구세주로 나선 진정한 이유는 지분 투자가 아니라, 미국 경제에 대한 영향력 확보서라는 주장이 설득력을 얻고 있다. 22일 뉴욕타임스는 아시아 국가의 국부펀드들이 씨티그룹ㆍ메릴린치ㆍ모건스탠리 등 미국 금융기관의 주식을 대거 사들이고 있는 배경에는 '정치적인 의도'가 도사리고 있다고 보도했다. 신문은 최근 세계 증시 폭락과 미국의 경기침체 등의 악재가 몰려옴에도 국부펀드들의 서방 은행들에 대한 투자 행보에 담긴 의미를 새겨봐야 한다고 분석했다. 펠릭스 로하튼 어드바이저는 "국부펀드의 궁극적인 목적은 수익률을 좇는 것이 아니라 세계 금융시장에 대한 영향력 확보"라고 주장했다. 중국투자공사(CIC)는 지난해 5월 미국 사모펀드 블랙스톤에 30억달러 상당의 지분을 투자해 관심을 모았다. 하지만 2개월 뒤 서브프라임모기지(비우량주택담보대출) 부실 사태가 벌어졌고, 그 이후 블랙스톤의 주가는 하락세를 거듭해 CIC측에 3,000억달러의 손실을 입혔다. 지난해 6월말 주당 35달러를 넘어섰던 블랙스톤의 주가는 지난 18일 18.67까지 떨어졌다. 지난해 연말과 올초에 걸쳐 아부다비투자청(ADIA)과 쿠웨이트투자청(KIA)은 씨티그룹에 각각 75억달러, 30억달러를 쏟아부었다. 한국투자공사(KIC)도 메릴린치에 20억달러를 투자했다. 하지만 지난 주말부터 전 세계 증시가 폭락, 월가 은행들이 줄줄이 역대 최악의 손실을 기록하면서 이들도 손실을 피할수 없게 됐다. 이에 따라 국부펀드들의 투자가 "금융시장에 멋 모르고 뛰어든 성급한 결정"이었다는 분석까지 나오고 있다. 로하튼은 그러나 "이는 국부펀드들의 의도를 잘못 판단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국부펀드의 운용주체가 한 국가의 정부이기 때문에 이들이 하는 투자의 하나하나가 정부의 역할과 같은 성격으로 파악돼야 한다는 것이다. 또 국부펀드로부터 자금유치를 할 때 회사들이 의결권을 위협받지 않는 비율로 '분산 수혈'을 받고 있어 이는 크게 우려하지 않는 것은 어불성설이라는 분석이다. 로하튼은 "그들이 의사회 의석에 앉아 있지 않다고 해서 영향력 행사를 안한다는 생각은 코웃음 칠 일"이라며 "찰스 프린스 전 씨티그룹 최고경영자(CEO)가 물러나는 데 가장 큰 입김을 불어넣은 사람이 왈리드 빈 탈랄 사우디 왕자였다"고 말했다. 뉴욕타임스지는 "국부펀드를 지나치게 적대시하는 것은 옳지 않지만 미국 금융당국과 월가가 현금확보만 급급해 이 같이 잠재된 요소들을 간과해서는 안된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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