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미측 수석대표를 지낸 웬디 커틀러 미국무역대표부(USTR) 대표보가 지난 14일 "한미 FTA 자동차 분야에 할 일이 더 남았고 더 해야 한다"고 밝혔다. 미국이 재협상이든 추가협상이든 아니면 FTA 협정문 밖에서든 '추가요구'를 해올 것이라는 예상이 점차 현실화하고 있는 것이다. 우리 측은 어떤 식의 재협상도 수용할 수 없고 미측이 FTA와 별도로 요구사항을 제시해도 받아들이기가 만만치 않아 한미 FTA 비준이 장기화할 가능성이 커지고 있다. 한ㆍ유럽연합(EU) FTA 가서명에 자극을 받은 미측 여론이 변수지만 건강보험 개혁이라는 최대 현안과 내년 중간선거를 앞둔 미측이 전향적으로 조기 비준안 처리에 나서기를 기대하기 어렵다는 게 현실이다. 미 행정부가 협상이 끝난 FTA에 대해 국제적 관례를 깨며 추가요구를 하려는 것은 금융위기 이후 GM·크라이슬러 등 미국 자동차 업체가 벼랑 끝에 몰리고 대량실업이 발생하는 등 성난 자국 내 사정 때문이다. 순전히 미국 자동차업계의 문제지만 한국차가 지난해 미국에 60만대 가까이 수출된 반면 미국차의 한국 수출은 8,900여대에 불과했던 교역불균형도 미 정치권을 정서적으로 압박하고 있다. 이런 미국 내 상황과 커틀러의 발언으로 볼 때 미측이 추가요구를 하는 것은 시간 문제로 보인다. 미측 사정은 딱하지만 우리 측이 도와줄 뾰족한 방법은 없다. 오죽하면 김종훈 통상교섭본부장이 "미측에 전폭적 개방을 한 만큼 FTA를 활용하라"고 미 자동차업계에 조언을 할 정도다. 실제 EU와 비교해도 미측 개방조건이 좋다. 한미 협상에서 자동차 분야의 미측 요구가 사실상 100% 수용됐다는 것은 정설이다. 정부의 한 관계자는 "정상적으로 미측이 무엇을 추가로 요구할 것이 있는지 모르겠다"고 답답해 했다. '재협상은 없다'고 정부가 못박아 미측과의 재협상으로 비칠 어떤 협상도 하기 어렵고 미측이 별도로 새 요구를 해도 이를 받아들이려면 한미 FTA 비준은 늦어질 수밖에 없다. 그렇다고 미측이 자동차 문제를 지나치고 연말이나 내년 초 의회 비준을 전격 추진하기를 기대하는 것은 '순진한 것'이라고 한 국책연구소 통상전문가는 평했다. 그나마 자유무역에 소극적인 민주당과 오바마 정부를 미 언론들이 비판하며 결단을 촉구하는 것이 한미 FTA 비준의 원군이다. 블룸버그통신은 한·EU FTA 가서명 후 "경기침체를 벗어나려는 EU의 몸부림을 대변하는 것"이라며 "이번 가서명으로 잠자고 있는 미국 의회와 행정부가 깨어날(wake up call) 가능성이 있다"고 비준 진전 가능성을 기대했다.
< 저작권자 ⓒ 서울경제,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