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D사에 다니는 이모 대리는 아침 출근시간마다 전쟁을 치른다. 어린 자녀를 누구에게 맡길까 전전긍하기 때문. 부인과 맞벌이를 하고 있는데다 양가 부모 모두 지방에 살고 있어 꾸준히 봐줄 사람이 없는 상황이다. 그는 “우리 회사가 직장보육시설 의무 대상인걸로 알고 있지만 재정이 어렵다는 이유로 보육시설 설치를 미루고 있다”면서 “아이를 출근하면서 맡겼다가 퇴근할 때 데려갈 수 있었으면 좋겠다”고 답답함을 토로했다. 이모 대리의 회사처럼 직장보육시설을 설치해야 하는데도 의무를 외면한 서울 소재 기업이 전체의 약 40%에 달하고 있다. 6일 서울지방노동청에 따르면 지난해 말 현재 영유아보육법에 따라 보육시설을 설치해야 하는 192개 기업 중 113개(58.9%)만이 해당 법령을 이행 중이다. 보육시설 운영형태를 보면 직접 설치해 운영하는 기업이 63개, 다른 보육시설에 위탁한 기업이 10개, 보육수당을 지급하는 기업이 40개였다. 나머지 79개 기업은 법령을 위반해도 과태료 부과 등 직접적인 제재가 없어 의무를 이행하지 않고 있다. 현행법에 따르면 상시 여성근로자 300명 이상 또는 근로자 500명 이상인 사업장은 직장보육시설을 설치해야 한다. 노동청의 한 관계자는 “도심 등에 위치한 기업의 경우 부동산 가격이 너무 높아 부지 확보에 어려움을 겪고 있으며 금융기관과 같이 지방에 지점이 많은 기업들은 서울에만 보육시설을 설치하면 지방과 형평성 문제가 불거질 수 있다는 이유로 의무를 이행하지 않고 있다”고 설명했다. 그는 “의무를 이행한 기업에 대해 인센티브가 있는 것도 아니고 불이행 기업에 대한 제재수단도 없어 보육시설 설치를 독려하기가 쉽지 않다”고 말했다.
< 저작권자 ⓒ 서울경제,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